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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길 없는 고통

by 마음햇볕




부모님을 뵈러 가는 길은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내키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내키는 것도 아니다.

양가적인 마음 때문인지 부모님께 가는 날이 다가오면 더 바빠진다.

몸도 피곤하고 밀린 일도 생각난다.

부모님께 드릴 반찬과 특별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부담을 일으키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모르게 가지 못할 이유를 캐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다음날 차를 타고 출발한다.

피곤과 약간의 긴장을 느끼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한 것 같다.

누구는 부모님을 만나고 나면 에너지가 오르고 기분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하기 싫은 과제를 미루다가 하는 것 같다.

과제를 하고 나면 겨우 끝냈다는 안도감을 느낄 뿐 배고플 때 밥을 먹은 듯 든든하지는 않다.

오랫동안 과제하는 기분으로 부모님을 만났다.

이런 기분은 유쾌하지 않아서 마주하기 싫었다.

그래서인지 과한 책임감과 헌신으로 부모님께 드릴 음식을 바리바리 준비했다.

마치 음식으로 내 불편감을 부정하거나 덮으려는 듯.

불편감을 느끼는 것 자체를 보고 싶지 않아서 더 지치게 바쁘게 산다.




나이가 들자 몸의 속도가 느려져서 본의 아니게 바쁘게 사는 게 힘들어졌다

전반적인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니 마주하게 되는 요즘이다.

기어코 마주하는 그날.

내일은 요양원에 입소한 아버지를 뵈러 가는 날이다.

한 달 전쯤 갑작스럽게 요양원으로 가시게 된 아버지.

아버지가 치매를 앓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전이다.

“머리 영양제”라고 불리는 치매 약을 드시면서 겨우겨우 버티셨다.

아버지는 시간이 가면서 두께가 점점 얇아지는 유리인형처럼 위태로웠다.

자식을 키우시던 한창때의 아버지 피부는 햇볕에 탄 구릿빛이거나 술에 취한 붉은빛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창백한 하얀색이다.

두꺼운 가죽 같던 손은 탄력 없이 부드럽다.

아주 잠깐 과거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빛이 스쳐가기도 하지만 촛불처럼 사그라진다.

치매를 앓기 시작한 아버지에게 익숙해지자 아버지는 다시 달라졌다.

막연하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너무 부자연스럽게 느껴져서 티브이를 끄듯이 꺼버렸다.

날카롭고 지독하고 단단하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는 너무 이상했다.

조금만 걸어도 어지러워하는 아버지.

어떤 얘기에도 “응, 응.” 끄덕이기만 하는 아버지.

우기지도 않고 물건을 부수지도 않는 아버지.

섬처럼 가족과 떨어져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아버지.

그저 돈을 버는 것이 유일한 낙인 것처럼 돈만 벌었던 아버지.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그냥 인간이었는데 시간에 따라 아버지가 변하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는 무엇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가?

마주할까 두려운가?

아버지가 나쁜 인간만은 아니라는 것.

아버지의 상처를, 고통을 보게 될까 봐.

그러면 아버지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을 테니까.

당신의 분노에 파묻혀 혼자 불탔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때문에 아버지를 끝까지 미워하기로 했었다.

곁을 주지 않는 아버지는 언제나 화가 나 있었고 때로 폭발했다.

아버지는 시한폭탄 같았는데 그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스스로 분노의 섬이 된 아버지에게 멀리 도망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처럼 느껴졌다.

무서운 아버지.

폭풍전야 같은 날들은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버지가 미웠다.

따뜻하고 안온한 봄날 같은 어린 시절은 동화 같은 일이었다.

어둡고 위태롭고 두려운 날들은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하게 했다.




이제 원망을 그만둬야 하는 그날이 온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를 용서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은 아버지가 치매를 앓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느끼고 있었다.

강원도 시골집에 어쩌다가 같이 가게 된 날, 아버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꺼냈다.

막 가장이 된 젊은 남자 이야기.

돈 한 푼 없이 정말 밥그릇 한 개, 국그릇 한 개, 숟가락과 젓가락 두 벌이 전부였던 살림.

아버지는 강원도 산골에서 나와 서울로 와서 목재를 나르는 리어카를 끌었다고 한다.

한 개뿐인 밥그릇에 꽁보리밥을 싸고 김치나 콩자반이 전부였던 도시락을 먹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는 자기들끼리 어울려 도시락을 먹었지만 아버지는 숨어서 혼자 밥을 먹었다.

너무 보잘것없는 도시락이 창피했다고.

아버지가 창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쌓인 목재 아래에 숨어 형편없는 도시락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 표정은 그 오랜 시간을 뛰어 넘어서 아직도 목재 아래에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목멘 목소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그날의 서러움, 창피함, 두려움, 슬픔을 마치 지금처럼 느끼고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나 노인이 된 아버지에게 젊은 날은 고통이었다.

젊음은 지나갔지만 고통들은 그대로 남았다.

아버지의 고통은 내게 낯설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쉬는 것이 불편한 분.

막연하게 저렇게 살면 힘들겠지 아주 짧은 시간 상상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힘겨움은 무서운 아버지로 쉽게 가려졌다.

아버지 때문에 내가 상처받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이를 갈았다.

내 고통의 근원은 아버지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했던 것 같다.

오랜 미움에 내 고통을 아버지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려 가는 것은 오랜 고통을 만나는 것이다.

아버지의 고통과 내 고통.

부모를 만나는 것은 내 상처를 보는 것이다.

그들의 상처는 내가 받을 사랑을 가져가버렸다.

처음에는 몰랐다.

부모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을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사랑이 덜 하거나 부족할 때, 느끼기 어려웠던 순간들은 상처가 되었다.

어머니가 고통받으니 내게 줄 사랑이 줄거나 기회가 사라진다고 여겼다.

어머니를 고통 주는 대상은 아버지니 아버지를 미워했다.

끝나지 않는 추격전처럼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나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고통받는 여자를 미워할 수 없어서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머니는 언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을까?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에 와보니 어머니는 언제나 원망을 했다.

어머니의 삶은 원망으로 진행이 되었다.

나는 그걸 몰랐고 알았어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생기가 점점 빠져나가고 있는 아버지를, 낯선 아버지를 만나야만 하는 지금.

고통은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랫동안 도망치려고 애써서 이 순간이 벅차다.

부모가 고통에서 도망치다가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모습은 상처가 된다.

이제는 추격전을 멈춰야겠다.

어차피 고통을 피할 길이 없는데 힘을 빼고 싶지 않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닌 것처럼 고통이 없는 삶은 없다.

파도가 잔잔할 때도 있고 거칠 때도 있는 바다에서 산다는 것은 파도를 원망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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