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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발견

by 마음햇볕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기분 나빠한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보이고자 노력한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갑자기 화를 내거나 흥분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사소한 일에도 급발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제거하는 것이 좋은 상태라고 여긴다.

그런데 감정은 억압하거나 억제할 수는 있지만 제거는 못한다.




억압과 억제는 프로이트와 안나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에 속한다.

둘 다 “누른다.”는 의미인데 차이가 있다.

억압은 자신이 누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지고 억제는 의식적으로 누르는 것이다.

의식을 하거나 못하는 것은 성숙과 미성숙의 차이를 나타낸다.

억압은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미성숙한 방어이고 억제는 성숙한 방어다.

억압은 방어기제의 여왕으로 불린다.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이나 충동은 억압하는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억제와 다르게 충동이 없어질 때까지 누른다.

방어기제로서 억압을 많이 사용할수록 억압된 생각과 충동이 나오지 않도록 편견, 선입견이 많다.

사람은 방어 없이 살기는 어렵다.

물론 솔직한 태도가 가장 좋지만 항상 솔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방어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미성숙한 방어나 한 가지 방어기제만 사용하는 것은 해롭다.

다양한 방어기제,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억제는 조절에 도움을 주는 방어기제다.

성숙한 방어기제로는 억제, 유머, 승화가 있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억압, 투사, 부정, 전이, 동일시, 퇴행, 신체화, 행동화 등이 있다.

방어란 의미 자체가 고통을 막는다는 것인데 대부분 고통이 외부에 있다고 전제한다.

고통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당연히 고통은 ‘나’를 제외한 밖에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밖에 존재하는, 밖에서 오는 고통을 막기 위해서 많은 방어기제를 동원하는 것이다.

나와 외부에 존재하는 고통은 쫓고 쫓기는 끝없는 경주를 한다.

잡히지 않는 고통을 쫓다가 숨기도 하고 태연한 척하기도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틈만 나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많은 “생각”을 통해 계획을 세우고 대책을 마련한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되고 자신의 삶은 망가졌거나 망했거나 저주받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기회가 되면, 힘이 생기면 생각에 몰두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진이 빠지게 한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답은 보이지 않는다.

생각이란 늪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한다.


어떻게 하나?


이런 순간을 만나면 심리상담을 고려한다.

부디 상담사가 해답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담사는 해답을 갖고 있지도 않고 알고 있더라도 말하지 않는다.

상담은 직접적인 조언이나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역동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리역동을 다룬다는 것은 반복되는 마음의 움직임을 말한다.

마치 마음의 공식이 있어서 이 공식에 경험을 넣으면 일정한 결과가 나온다.

이 공식은 성장기 부모와 어떤 경험을 했는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마음 공식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다.

내 마음 공식을 알면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 수 있고 해석에 따라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할지 알 수 있다.

삶에서 적절하게 대응하기를 원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마음의 공식을 살펴봐야 한다.

마음 공식이 왜곡되어 있으면 해석, 판단, 행동도 왜곡된다.

마음 공식을 살펴보지 않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받고 생각만 하면 고통은 반복된다.

자신이 원하는 마음의 공식이 아닐 경우 외부와 상관없이, 또는 외부의 충격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

결국 고통은 내 마음의 공식, 내부에 있는 것이다.



생각에 빠진 사람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알코올중독인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술을 마신다.

착취적인 연애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별하지 못한다.

가족들에게 다정하면서도 책임감이 있는 부모가 되고 싶어 하면서도 화만 낸다.

취업을 하기를 원하면서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으며 자신을 비난한다.

답을 알고 있지만 안 되니 답답하고 두렵다.

함정에 빠진 기분이다.

머리 터지게 생각을 하지만, 답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고통스럽다.

고통은 감정인데 생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생각이 최고인지, 고통이 밖에 있는 것인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생각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면 지금까지 힘든 이유가 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내담자들이 흐릿하거나 선명하거나 뭔가 내부에서 알고 있었던, 느꼈던 것이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나만의 느낌이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고 한다.

내부의 감각은 감정을 말한다.

우리는 외부의 사건, 상황을 다섯 가지 감각(오감: 눈, 귀, 코, 입, 피부)으로 자신의 내부로 가져온다.

외부 정보는 마음의 공식에 들어가서 해석된다.

해석이 되면 보고서가 출력되는데 그것이 감정(장소는 변연계이다.)이다.

감정이란 보고서는 이성(장소는 대뇌피질이다.)에게 전달되고 생각은 감정 보고서를 바탕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행동 지침을 결정한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과거 외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정보를 접하면 현재 상황과 상관없이 긴장과 불안, 두려움이 높은 감정 보고서가 출력된다.

또는 현재 상황과 상관없이 어떤 감정도 감지하지 못한다.

과각성, 저각성 상태의 감정 보고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기 어렵다.

아예 감정을 억압, 억제하면 생각은 현실을 해석한 어떠한 보고서도 없는 상태에서 복불복으로 행동 지침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외부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감정 보고서다.

보고서가 외부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해석할 때 타인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결하는 각자의 방법은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하나의 답이 있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해결책은 다 다르다.

솔직한 감정 보고서를 작성할 때 현실 대응은 누구나 최선의 방법을 발견한다.

감정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감정을 잘 느껴야 한다.

억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느껴야” 한다.

감정을 잘 느끼는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관계, 상황 대처에서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내부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집중하고 신뢰할 때 든든한 지원군을 얻는 것이다.

감정적인 사람이란 어떤 관계, 상황에서도 중심을 잘 잡는 안정감 있는 사람이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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