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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속 고통의 3대 유전

by 마음햇볕




누구나 고통은 싫어한다.

행복과 즐거움은 가까이하고 싶고 언제나 머물고 싶어 한다.

고통은 회피하고 좋은 것에는 접근한다.

접근과 회피를 내 마음대로 하면 참 좋으련만 노력해도 안 되면 화가 나고 슬퍼진다.

좌절하고 막막해지면 상담센터를 방문한다.

(혹은 무속인을 찾기도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 대부분은 부모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더 좌절한다.

내 팔자가, 운명인 것처럼 느낀다.

마치 저주받은 핏줄이라 여긴다.

화가 나고 억울해한다.

내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왜 내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나.

부모의 고통, 부모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수록 늪처럼 빠지는 것 같다.

우선, 부정적 감정과 긍정적 감정은 노력하면 버리고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자.

모든 감정은 수명이 있는데 90초라고 한다.

부정적 감정이나 긍정적 감정은 90초면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이 말을 들은 내담자들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감정의 평균 수명이 90초라는 것은 이보다 짧거나 길 수도 있다.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것처럼 모든 감정은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그런데 부정적 감정이 너무 싫을 때 부정적 감정만 지켜보고 있으면 부정적 감정만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든다.

같은 시간이라도 집중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부정적 감정을 피하려면 부정적 감정이 나타나는지 지속 살펴보게 되고 덕분에 그토록 바랐던 긍정적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 놓인 사람은 부정적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느낀다.

자신의 삶은 늘 고통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성장하면서 부모가 갈등하고 힘든 삶을 사는 부모와 살다 보면 고통을 피하고 싶은 바람이 커진다.

부정적 감정, 즉 고통을 만나지 않으려고 마음은 보초를 서고 긴장과 불안에 시달린다.




강한 고통은(외상, 트라우마라고 말한다.) 출생 후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유전이 된다고 한다.

고통이 3대에 걸쳐서 내려온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충격적일 수도 있다.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유전이 된다니.

증조부모, 조부모, 부와 외증조부모, 외조부모, 모.

그들의 고통이 내게 전달된다.

이 주장은 후성유전학에서 제기되었다.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 서열이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전자 기능에 일어어나는 유전 가능한 변화를 다루는 신생분야이다.(마크 월린/『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심심)

과거에는 부모에게 받은 염색체의 DNA로만 유전된다고 생각했다.

염색체 DNA 중 신체적 특징을 전해주는 것은 2퍼센트가 안 된다고 한다.

98퍼센트는 ‘비부호화 DNA’이며 감정, 행동, 성격 특성을 담당한다고 한다.

비부호화 DNA를 과거에는 정크 DNA라고 불렀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비부호화 DNA는 고등동물일수록 비율이 높다.

비부호화 DNA는 환경적 영향을 받는다.

즉 임신한 엄마가 스트레스나 외상에 노출되면 비부호화 DNA는 영향을 받는다.

영향받은 비부호화 DNA는 아기가 출생 후 삶에 영향을 준다.

짧게 설명하면 이런 메커니즘에 의해 고통이 전달된다.

출생 전 부모에게 고통을 전달받고 살면서 고통이 추가된다.

고통이 넘쳐흐르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고통은 유전되는 걸까?

진화측면에서 보면 도움이 되는 것이 지속 유전이 되는데 고통은 생존에 도움이 된다.

부모는 자신이 겪은 고통을 자식은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고통을 전달하는 것이다.

알아야 피할 수 있으니까.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이 전달되기는 했지만 이것이 왜 고통인지 모른 상태에서 그저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고통은 이해되어야 한다.

맥락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원하지도 않았는데 부모와 비슷한 것으로 고통스럽다면 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 전달된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면 3대의 고통이 끝나는 것이다.

한 번에 3세대의 고통을 해결하는 샘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오애순은 자신의 엄마와 닮았고 오애순의 딸 금영이는 오애순을 닮았다.

세 명은 똑똑하고 당차다.

오애순 엄마 전광례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바다에서 잃었다.

그리고 딸을 시댁에 남겨놓고 재혼을 해서 남매를 낳는다.

두 번째 남편은 생활력이 없어 전광례는 억척스럽게 일을 해야 했다.

전광례는 제주 출신이 아닌 피난민이었다.

부모도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

마치 애순이가 엄마 없이 할머니 집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애순이는 엄마처럼 당차다.

하지만 현실은 높은 벽이었다.

육지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했다.

돌봄을 받지 못하는 고통이 대물림되었다.

금명이는 오애순의 꿈을 실현하듯이 명문 대학을 갔다.

금명이는 더 날아올라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이유는 모르지만 더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부담이 지속된다.

금명이 딸에게 어떤 고통이 유전되었을까?

양관식은 자신의 엄마인 권계옥이 양관식 아빠와 야반도주를 해서 낳은 아이다.

권계옥의 시어머니는 결혼을 반대한 것으로 암시된다.

권계옥은 사랑을 지속 갈구한다.

이런 모습은 양관식에게 전달된다.

양관식은 오애순에게 집착하고 오애순과 야반도주를 한다.

그 결과 금명이를 낳는다.

양관식의 아들 양은명은 부길상의 딸 부현숙과 사랑에 빠진다.

양은명 역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

이 드라마는 복사 붙여놓은 것처럼 비슷하게 반복되는 것이 잇다.

인물들이 겪은 고통은 전달받은 고통과 자신의 고통이 직조되어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감동받으며 재미있게 보게 되는 이유는 고통에 삼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통을 통과해서 기어코 사랑을 향해 가는 모습은 드라마 주인공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모습니다.

고통이 전달, 유전되는 이유는 팔자가 기구해서가 아니라 고통은 당장이 아니더라도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해서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사랑의 다른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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