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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전사

by 마음햇볕




어벤저스 영화 영웅들은 그리스로마 신화 신과 닮았다.

이야기 깊이는 다르지만 어벤저스 영화나 그리스로마 신화나 등장인물들 능력은 신에 가까운데 인간 욕구를 갖고 있다.

그들은 업그레이드된 인간일까?

아니면 강등된 신일까?

어쨌든 예상하지 못한 사회적, 개인적 충격이 많은 요즘은 특별한 능력이 있었으면 싶다.

거미에 물리거나 컴퓨터 슈트가 있거나 활을 무지하게 잘 쏘거나 신체 능력이 엄청나거나.

하지만 비범한 능력은커녕 있는 능력도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산책을 하는데 초로의 아저씨가 열심히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표정은 전력투구인데 속도는 빨리 걷는 정도였다.

누군가, 무엇이 아저씨 속도를 훔쳐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 몸은 세월에 속도를 뺏기고 있었다.

플러스 영역은커녕 마이너스 영역으로 진입하는 몸을 느낄 때 세상의 충격에 더 위축된다.

문득 두려워진다.


‘잘 살고 있는 걸까?’


삶이 마이너스 영역에서 지하로 진입할 것 같다.

현실의 불안과 미래 불안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온다.

풍량이 거센 바다에서 “노인과 바다” 같은 자신을 발견한다.

아저씨는 주변을 돌아본다.

다른 마이너스 영역에서 걷는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도 아저씨도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만 속도를 뺏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에 다리가 조금 가벼워진다.

아저씨는 여전히 달리기 선수 같은 표정으로 힘차게 달린다.

내 시선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아저씨는 “달리고 있다.”는 상징이 된다.

멈추지 않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껴진다.

나도 걷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옆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힙합 외양의 할머니가 지나간다.

세상을 씹어먹을 것 같은 당당한 표정의 할머니는 먼 미래 인간 같다.

어쩌면 할머니는 마이너스 영역을 넘어 지하 영역에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속도를 낼 수 없는, 뺏기려야 뺏길 수 없는 상황이니까.

하지만 어떠랴.

능숙하게 전동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나를 앞지른다.

상징 같은 아저씨도 곧 따라잡았다.

산책로 벤치에 앉아서 아저씨와 할머니가 멀어지는 것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거둔다.

우리는 원하지 않은 속도라 할지라도 세상의 파도를 타고 있음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노화가 진행되는 문턱의 남녀와 이미 노화에 놓인 할머니일 것이다.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그러나 원하지 않은 몸의 저속을 비난하는 것은 두려움이 만들어낸 분노다.

두려움과 불안이 분노의 가면을 쓴 것이다.

분노는 타인 비난으로 드러난다.

달리기 선수 같은 표정으로 저속 달리기 하는 아저씨를 비웃는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할머니에게 혀를 찬다.

타인을 비난하는 분노에는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이 함께 있다.

나도 저속 달리기 하게 될까 봐, 더 나이 들면 전동휠체어를 탈까 봐.

그렇게 되면 어쩌지?

끊임없이 자신을 노력하라고 몰아붙이고 잠시라도 속도가 느려지면 스스로 비난한다.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려고 워커홀릭이 되기도 하고 술을 많이 마시거나 게임에 몰두한다.

웹툰을 보고 미친 듯이 청소하고 연인에게,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집착한다.

뜯지도 않은 택배가 쌓이고 종교에 시간, 돈, 마음, 모든 것을 바친다.

그럼에도 자신을 향한 비난은 멈추지 않는다.

결국 최종 빌런은 자신이 된다.

내면은 너덜너덜하지만 아닌 척 연극을 하면서 상대를 비난한다.

상대가 잘 되면 축하해 줄 수가 없다.

내 속도를 뺏긴 것처럼 속이 뒤틀린다.


너만 영웅이 될 수는 없어.

너만 업그레이드되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축하 속에 작은 폭탄을 넣어 보낸다.

부디, 네가 최고로 행복할 때 폭탄이 터지길 바라.

하지만 상대는 이미 승자라 그런지 폭탄마저 비켜 가고 고통은 자신에게 반송된다.

이런 머저리.

자신을 비난하면서 빌런은 자신임을 다시 깨닫는다.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바다가 아닌데도 파도가 올까 봐 소용없는 불안에 시달려왔음을 알게 된다.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인다.




촉촉한 봄비가 내리며 약간 서늘한 날씨처럼 마음이 젖는다.

조용히 벤치에 앉아서 이미 한 점이 되어버린 아저씨와 할머니를 쳐다본다.

누구와 무엇과 경쟁하고 싸웠을까 싶다.

누구와 무엇에 속도를 뺏겼다고 생각했나 싶다.

자신 안의 두려움이 불안을 만들고 불안이 비난을 일으킨다.

가만히 앉아서 두려운 자신을 쳐다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든다.

슬프면서 안도감이 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중간 지점 같은 기분이 든다.

오래된 새로움이 새싹처럼 푸릇하다.

일렁이는 파도로 바다를 인식한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파도를 탄다.

멀리서 파도를 타는 초로의 아저씨와 미래 종족 같은 할머니가 있다.

멋지게 파도를 타는구나.

다정함이 스며든다.

우리는 모두 다정한 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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