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외부 자극을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다.
눈, 귀, 코, 입, 피부 감각으로 정보는 내면으로 들어온다.
그중에서 눈(시각)이 비중이 크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다.”
눈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또는 내면을 반영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그다음 비중이 있는 감각은 귀다.
소리.
눈을 감으면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소리로 거리를 가늠할 수도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유년 시절 가정불화를 겪은 내담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내담자에게 직접적으로 유년 시절 기억을 묻기도 하지만 묻지 않아도 알게 되는 정보가 있다.
유독 소리, 큰소리에 예민한 사람은 유년 시절이 힘든 경우가 있다.
어떤 내담자는 부모 갈등이 없었는데 큰소리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모든 사람이 해당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기억이 나지 않거나 없다고 해서 부모 갈등이 없었다고 하기 어렵다.
인간의 기억은 언어가 발달되어야 본격적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3세 이전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3세 이전에 큰 충격을 받으면 성장 후 기억은 안 나지만 반응은 보인다.
예를 들면 부모 싸움처럼 가정불화가 잦은 가정에서 성장할 때 큰 소음에 반응한다.
싸울 때 물건을 부수는 소리, 큰 목소리, 울음소리, 비명 등은 무의식에 저장된다.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면 유년기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유년기는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부모나 나이 많은 형제에게 당시 상황이나 부모 관계를 물어서 유추할 수 있다.
유년기 상처가 없어도 큰소리에 깜짝 놀라는데 큰소리는 위험을 의미하기에 교감신경이 작동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년기 외상 위에 성장기 지속된 충격은 불안, 우울을 가중시킨다.
어떤 사람은 성장기 부모가 다툴 때 자기 방에 들어가 이불속에 숨어서 귀를 막고 있었다고 한다.
목격하지 않았으니 영향이 없지 않냐고 질문한다.
부모가 다툴 때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이불속에 숨은 것이라서 이미 고통의 소리에 노출이 된 뒤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시각이 차단되면 청각이 더 예민해져서 귀를 막아도 소리는 들린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귀를 손으로 막는 대신 이어폰을 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들으면서 외부 소리를 무시하기 위해서다.
또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이어폰을 사용하기도 한다.
음악은 도피가 되고 이어폰은 방패가 된다.
외부와 내부에서 들리는 고통의 소리 화살을 막느라 종일 이어폰을 끼고 있다.
감각은 외부 정보를 받아들여 적응하고 생존하게 돕니다.
그런데 때로 감당하기 벅찬 강한 자극들, 트라우마로 부를 수 있는 자극들은 가시처럼 마음에 박힌다.
고통의 기억은 일상에서 과각성을 일으킨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조금이라도 비슷하면 마음은 감각의 문을 닫으려고 한다.
눈을 감고 이어폰을 낀다.
어떨 때는 자신조차 놀라고 괴로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공포를 느끼는 자신을,
오토바이와 자동차 소음에 너무 놀라서 욕을 하는 자신을,
무례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참기 어려운 불편감,
칭찬이 아니면 다 공격처럼 느껴지고 무시한다고 생각이 드는 자신을,
사소한 일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자신을,
아무 일이 없어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실망할까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나도 모르게 신경초처럼 움츠려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를 비난한다.
때로 비난이 더 큰 고통을 막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내가 나를 혼냈으니까 나를 미워하지 마세요. “
스스로의 비난, 자책에는 이런 의미가 숨어 있기도 한다.
“내가 벌을 내리고 벌을 받았으니 나를 버리지 마세요.”
“알아서 비난했으니 나를 비난하지 마세요.”
스스로 하는 비난은 레이스 머플러 한 장으로 눈보라를 막고자 하는 것과 같다.
외부와 내부의 자극이 있을 때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너무” 힘들다면 고통을 따라 삶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한다.
서둘러 자신과 타인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고 고통을 쳐다보는 게 도움이 된다.
이어폰을 빼고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외부와 내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자신을 집어삼키지 못한다.
소리는 소리일 뿐이다.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나의 감각이 과거 경험한 고통의 정보를 활용해 경보를 울리고 있음을 “알게 되면” 마음은 가라앉는다.
머리로 알게 된 뒤 더욱 소리에 집중하면 마음이 알게 된다.
머리와 마음이 모두 알게 되면 온전히 알게 되어서 고통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정되는 고통과 행복이 없음을 알게 되면 멀리서 바라보는 잔잔한 바다처럼 마음은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