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딸의 근무일지

2화. 집에 가기 싫어

by 새초로밍

일단 출근은 했다.

하기 싫었지만, 우리 아빠의 그런 조치에 반기를 들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매일 박 과장이라는 분에게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경제무역을 전공했다고는 하지만,

회계는 하나도 모르는데, 정말 대차대조표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전산으로 배우는 회계, 직접 써야 하는 장부,

매일매일 출근하자마자 은행 인터넷뱅킹 확인.

점심 먹고 은행 다녀오기

급여계산, 부가세 신고, 법인결산까지 배워야 했다.



열심히 일을 배우며, 박 과장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연습장에다가 마구 휘갈기며 기록했고,

내 자리에 오면 그걸 다시 노트에 정리해서 옮겨야 했다.

내가 학창 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지.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내 자리는 회사 현관 바로 앞.

회사에 왜 그렇게 많은 방문객들이 있는지,

울려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눈앞이 흐려지려고 하면

누군가가 방문을 하고,

저 멀리서 간부님들이 벌떡 일어나서 마중하며 하는 제일 첫마디


"아이고 어서 오세요. 여기 사장님 따님입니다"

"아~~ 예~~~ 반가워요~ 아빠 닮았네~~"


"안녕하세요------"


슬쩍 웃어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의 반복.


그러고 다시 일을 하려고 하면, 그 방문객이 슬쩍 나에게 온다.

" 내가~ 말이야, 아빠랑 어디서 어떻게 하고 어쩌고저쩌고..."

" 아, 네..... 후훗 으흣 아~~ 하하하 네~~ 네네"


방문객들은 나에게 관심이 많다.


"우리 따님은 대학 어디 나왔나~~"

"우리 따님은 아빠 회사 다니니까 좋겠어~~"

"우리 따님 남자친구 있나~~"

"선 좀 볼래요?"

"월급 얼마 주나 아빠가?"

"매일 아빠 보니까 좋겠어~"


남의 속도 모르고.......................


그렇게 그렇게, 1달 동안 인수인계를 받고 나는 회계를 도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동안 박 과장한테 전화를 수십 통씩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나마 젊은 내 또래의 사원들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로밍씨~ 로밍씨 온 지도 이제 한 달이 넘었는데 우리 환영회 해야지~~~"

"아 정말요?? 좋아요~~"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약속 장소로 갔다.

(그때는 주 6일 근무하는 중소기업이 많았다. 우리도 그랬다)

직원들과 슬쩍슬쩍 출퇴근하면서도 보고,

업무상 마주치기도 해서 이제는 대충 서로 아는 사이가 된 직원들과의 회식.

나는 너무 좋았다.

그동안 출근해서 인사만 하고서 늘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인간들의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고, 화기애애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는

노래방으로 이동을 했다.


아 좋아. 나 노래방에서 신나게 놀 거야~~

하고 남들 노래 부를 때 열심히 탬버린도 쳐주고,

나도 노래를 부르며 지금까지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있을 때쯤,

갑자기, 최 과장이 나를 불렀다.


"누나 잠깐 1층으로 와봐요"

"응? 그래~ "

나보다 1살 어린 친구인데, 나를 매우 편하게 대해줘서 너무 좋았다.


올라갔더니, 남자 직원 3명이 있었다.

나를 부른 최 과장,

내 가방을 들고 있던 김 과장,

그리고 택시 문을 열고 있던 강 과장.


음? 뭐지?????


최 과장이 말을 꺼냈다.

"누나 이제 집에 가"

"뭐?? 아 싫어~~"

"아니야 이제 누나 집에 가"

" 아 뭐야~~ 나 더 놀 건데~~~"

그러면서 나는 이미 등 떠밀려서 택시에 태워졌다.


그렇다.

사장딸은,

회식장소에 오래 머물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뒤로,

우리 회사 회식자리에 한 번도 초대받은 적이 없다.


(아빠회사 다녀서 진짜 좋겠다-- 제일 듣기 싫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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