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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Mar 25. 2024

雜(잡)

-  김사람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출간

* 본 글은 인터넷 신문 [미디어 시in] 2024. 3. 25일에 올린 기사입니다.


김사람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시인선으로 출간


― 나의 시가 너의 죽은 나무를 살리기를



김네잎 기자


김사람 시인의 네 번째 시집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가 걷는사람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김사람 시인은 2008년 《리토피아》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동안 시집 『나는 이미 한 생을 잘못 살았다』 『나는 당신과 아름다운 궁에서 살고 싶었을 뿐이다』 『DNA』, 장편 어린이소설 『은하』 등을 발간한 바 있다.


이 시집은 총 4장으로 구성된 장시로, 전체를 관통하는 시적 화자는 제도와 규율 속에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침묵하고 갈등하는 존재다. 폭력에 관한 세비야 선언(The Seville Statement 1989년 제 25차 유네스코총회)에 의하면 “폭력은 우리의 진화적 유산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우리의 유전자에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는 어떠한 폭력과 전쟁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음을 나타낸 말이다. 그걸 잘 알기에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 말”하는 모순적이고 비정한 세계를 김사람 시인은 예민하게 감각한다.


“나와 세계는 태초부터 잘못 맞춰졌다”라고 언술한 시인은 폭력으로 점철된 이 사회와 “소통하지 않기 위해 소통”하는 방법으로 시를 데려온다. “시 속에/ 영원이 있다 믿”기에 “몸이 불타고 남은 재 속에서” 날아오를 시를 쓰고자 한다. “죽은 아이를/ 죽은 부모를/ 죽은 시를/ 죽은 교육을/ 죽은 사랑을/ 죽은 사회를” 살리고 싶은 염원을 담아 시의 근원성과 존재성을 탐색한다.


그러한 탐색을 감지한 임지훈 평론가는 해설에서 “세계가 만들어낸 일면으로서의 폭력과 그것으로부터 탄생하는 상처에 스스로를 담그는 일, 그리하여 상처가 만들어 내는 내면의 중력에 자신을 맡기어 세계의 사물을 다시금 배치하는 일” 등을 시인이 멈추지 않고 있음을 언술했다. 그러한 시도는 어쩌면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이 갖게 될 ‘사랑의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김성규 시인은 표4에서 이 시집에는 “비겁함, 체념, 분노, 사랑에 대한 열망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수많은 시적 화자가 등장해 분열된 목소리로 시를 직조한다”며, “언어가 가진 규칙성을 해체하고 무수한 단어들과 텍스트들의 충돌, 언어의 옷을 벗기려는 행위, 파격과 해체의 시집으로 명명될” 것이라 예측했다.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는 비합리적인 질서와 구조 속에서 온갖 폭력이 행해지고 있는 시대에,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나아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는 존재들에게 “사랑은 내일 유전된다”고 위로하는 시집이다. 그 위로가 제시하는 ‘사랑을 찾는 여정’에 독자들이 기꺼이 동참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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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 시 맛보기>




손목을 긋고 싶다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는 병원에 가 보라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침묵했다


밤새 심장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두근거렸다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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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틀니는 자꾸만 빠졌다

내가 복싱 마우스피스를

처음 입에 넣었을 때처럼

맞지 않아도 흘러내리던


나와 세계는 태초부터 잘못 맞춰졌다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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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

세상은 그래도 아름답다 말한다


꽃은 나의 피가 필요하다 말한다

그래

적어도 나는 아름답게 살 줄 알았다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과거의 비는 그칠 줄 모른다」 부분




상처는 우리 안에 중력을 만든다

무의식 안으로 깊이 더 깊이

상처를 구겨 넣어 마침내

인간은 자기만의 블랙홀을 가진다


갇힌다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과거의 비는 그칠 줄 모른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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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끝맺을 수 있을지

내 모든 시는 미완성으로 끝난다

끝없는 끝을 향해 다가가는 것

닿을 수 없는 그곳

그의 눈을 말없이 한참 들여다보고 싶다

혹사하지 않는 삶에 무슨 시란 말이냐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꿈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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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너무 나무처럼 죽었어

벽이 가득

벽이 아늑

훔쳐보는 눈을 즐거워하는

나에게 와서

너를 가져갈 순 없겠니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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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사라진 밤

나는 너를 환상한다

가장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고백이

서러운 심장에 뿌리내려

너를 위로해 줄 추억이 될 때까지

바다 품은 빙하를 향해 걷는다


― 김사람,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걷는사람, 2024, 「남자들의 눈은 전쟁을 동경한다」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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