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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니콜라이 고골 『죽은 혼』에서

by 김네잎

인간에겐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만약 지금 열정에 휩싸인 소년에게 그의 노년의 초상화를 보여 준다면, 아마 공포에 질려 뒷걸음칠 것이다. 그래서 부드러운 소년기에서 엄격하고 잔인한 성년으로 넘어갈 때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모두 챙겨서 길을 나서야 할 것이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인간적인 충동을 가지고 가라. 도중에 그것을 버리지 마라. 다시는 그것을 집어 들지 못할 것이다!

- 니콜라이 고골 『죽은 혼』, 을유문화사, (2010)2020, p179.



수요 모임

―북클럽



첫눈이야, 달뜬 당신 목소리가

나를 깨웠다

사실 올해의 첫눈은 1월 언제쯤 내렸을 텐데

지금은 11월인데

왜 첫눈이라고 해? 물으려다 말았다

*

오늘의 필독서는 고골의 『죽은 혼』이다

이 소설엔 파벨 이바노비치 치치코프가 등장한다 러시아 지방 N시가 배경인데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 두 나라의 겨울은 몹시도 춥고 그 사람은 죽은 농노의 이름을 사러 다닌다 두 나라엔 농노가 많다


난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는다

늘 누군가는 늦고

내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을 읽는다

옆 사람이 필사한 글씨체는 단정하다

시계방향으로 돌아 곧 내 차례인데

감상은 발표를 싫어한다

책갈피에 붙인 포스트잇을 떨어뜨렸다 포스트잇이 실수로 탄생한 것처럼 당신은 실수로 태어났다는 말을 들으며 컸다고 했지 요즘은 내게 딱 붙어 있는 옆이 자꾸 늘어난다

나는 179쪽을 읽는다 “부드러운 소년기에서 엄격하고 잔인한 성년으로 넘어갈 때는 자신에게 있는 것을 모두 챙겨서 길을 나서야 할 것이다.”


난 스무 살 때 무엇을 챙겨 스물한 살에 닿았을까

모임은 계속되고… …

*


먼저 떠난 사람이

다시 돌아와

각자 집으로 돌아갈 길들이 다 지워졌다고 한다

폭설이 잦아들지 않아


홍차가 바닥을 드러낸다

우린 책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같은 구절을 읽고 또 읽는다


- 계간 작가들 2025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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