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어느덧 8개월
이제는 이 감정과 정신상태가 습관이 된 듯하다.
처음엔 퀭한 눈으로 얼이 빠진 채 회사에 다녔고, 밤엔 수 시간을 뒤척이다 끝내 울며 잠들었다. 슬프지 않은 날에도 억지로 울었다.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을 풀어낼 방법이 없어서. 이러다간 틀림없이 나쁜 결심을 하게 될 것만 같아 응급실을 찾듯이 병원을 찾아갔다. 감기에 걸려도 병원 한 번 안 가던 나인데 어쩌다 그런 용기가 생겼을까. 확실한 건 그 결심이 나를 살렸다. 이따금씩 심해에 빠질 때마다 약을 털어 넣었고 곧 진정되었다. 그렇게 희망이 보였다. 곧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그 희망을 동아줄 삼아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보고, 러닝을 시작하고, 위스키에 빠져보고, 시를 읽고, 글을 썼다. 행복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의사가 약을 줄여보자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이제껏 유지해 온 감정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행복이라 부르던 것들이 단순히 도파민을 좇는 우매한 일인 것처럼만 느껴졌다. 나를 위해 시도하고 도전했던 모든 행위들이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라했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속이기 위한 거짓, 딱 거기까지였다. 공든 탑이 무너지니 길을 헤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분명 잘못된 길이었는데, 도대체 옳은 길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술을 마신 날이면 어김없이 일기장에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죽도록 살고 싶었다.
결국 다시 약을 늘렸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뭐랄까, 빈 깡통이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행복도, 슬픔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밤이면 찾아오는 괴로움에 묵묵히 맞설 뿐이다. 새벽은 나를 잡아먹기 마련이라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잠들어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과 함께 매일을 싸운다.
무언가를 키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휩싸인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무작정 들린 꽃집에서 작은 스투키를 들여왔다. 식물이라곤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보다 보니 예쁘다. 그런데 문득 미안하다. 나는 너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아서. 내가 무언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기인한 것이라서. 날 필요로 하는 것에 오히려 내가 의지한다. 나를 위해서 너를 키운다.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더 들여다본다.
어쩌면 무미건조한, 때때로 삼켜진, 이를테면 0에 수렴하는 이 시간들.
이제는 이 감정과 정신상태가 습관이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