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지치고 사람에 힘낸다.

(5)어느 한 칵테일 바에서

by 이정

(*이전과 이어집니다)



오늘은 칵테일 바를 오픈하고 나서 첫 휴일이다. 무엇을 할지 따로 계획은 해놓지 않는다. 괜히 계획을 세웠다가 지키지 못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자책하게 되고, 기분 좋은 휴일을 보내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민아의 머릿속은 어젯밤부터 ‘독서 모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한참 고민을 한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게 뭐라고...’ 지난 몇 년간 나를 위해 좋은 말들을 수없이 찾아서 들었던 민아는 지금 망설이고 있는 행동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것 또한 과거의 많은 경험들 덕분인 것 같다. 역시 쓸데없는 경험이란 것은 없다. 실패를 했든, 후회하는 일이든 자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은 모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단, 그것을 기회로 삼아 과거의 나로부터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면 말이다.


민아는 어느새 통화 연결음을 듣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받았다.

“여보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그때 번호 받고 연락드렸어요. 칵테일 바요.”

“어머! 안녕하세요. 얼마나 기다렸었는데요. 연락이 안 올까 봐 조마조마했다고요.” 여자의 반가운 목소리 덕에 민아는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들이 금세 날아가 버렸다. 여자는 마침 1시간 뒤에 모임 자리가 있다며 민아에게 꼭 참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모임 장소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척 설레었다. 오늘 아침까지는 설렘보단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왔었지만 오히려 모든 상황이 정해지고 나니 뭔가 편안한 느낌이었다. 두 갈래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하지 못하고 있을 때, 각각의 길의 미래를 보지 못하는 그 막연함이 아마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든 일에서는 미래를 알지 못하는 법, 그렇기 때문에 이리가나 저리가나 거기서 거기다.


어느덧 모임 장소에 도착하고, 그때 만났던 긴 생머리의 여자에게 대략적인 모임 소개와 활동 계획, 시간 등을 상세히 설명 들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으로 자신이 읽은 책과 줄거리, 그리고 느낀 점을 간단히 발표한 후, 다 함께 토론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것을 여러 명의 관점에 서 보니까 시야가 훨씬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또 모임으로 인해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어서 의지가 약한 민아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걱정 반, 설렘 반이었던 독서모임이 끝나니 벌써 하늘이 어두워져 있었다. ‘내 가게가 잘 있나’ 생각하며 칵테일 바를 지나치고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들어서려 할 때 문뜩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아! 포장마차’ 오늘이 마침 휴일인 날에 포장마차에 한번 들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아는 혼잣말로 되뇌었다. ‘오늘 쉬는 날이면 어떡하지. 열려있었으면 좋겠다.’


걷다 보니 저번에 보았던 그 조명들이 환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았고 민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 또한 민아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두 사람은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동안 이어나갔다.

“민아 씨 되게 조용할 줄 알았어요.”그 남자가 말했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제 마음이 조금 편해지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져요.” 민아는 그 말이 익숙했고 뒤이어 말했다.

“전 그 점을 너무 고치고 싶어요. 나의 단점이 들통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여태껏 다른 사람들처럼 그 남자 또한 자신의 말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자는 민아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단점이요? 전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첫인상과 그 뒤에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많은 매력이 느껴져요. 아마 본인들은 모를 거예요. 그렇다고 그 두 점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매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들은 그들대로 매력이 있고, 민아 씨는 민아 씨대로 매력이 있는 거죠.” 그 말을 들은 민아는 남자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고, 자신이 생각을 조금만, 아주 조금이라도 바꾼다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후 10시. 집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하던 민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야? 나 지금 혼자 웃은 거야?’ 이런 날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흔치 않았다. 자신이 오늘 한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늘 기운이 빠져있었고, 마치 일을 하고 온 듯한 기분과 같았었다. 그런 탓인지 늘 사람과의 만남은 그렇게 환영하지 않던 민아였다. 그런데 칵테일 바를 오픈하고 요 며칠 동안은 사람들 덕에, 사람들로 인해 나 자신이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오늘도 민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트리고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한 발짝 내디뎠다.


매일매일 내딛지 않아도 된다.

뒤로 물러서도 된다.

모든 경험들의 빛이 모이게 되면 결국은 반짝거리는 별이 될 것이다.



(*다음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