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몰랐었던

(6)어느 한 칵테일 바에서

by 이정

(*이전과 이어집니다)



꿈같은 휴일이 지나가고, 꿈같은 나의 칵테일 바 문을 열었다. 다음 독서 모임 때 발표할 한 소설책을 진열장에 새로 놓아두었다. 그것만으로도 민아는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휴일에는 포장마차의 그 남자와 동네 맛집을 가기로 했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아직까지 100% 믿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뭐가 중요할까, 가정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칵테일 바의 문에 있는 유리창은 크기가 꽤 크다. 그래서 가게 안의 의자에 앉아 문 쪽을 바라보면 하늘을 볼 수 있다. 사실 민아는 낮의 하늘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도대체 왜일까, 주야장천 밤하늘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 민아는 오늘 정말 오랜만에 노을이 지고 있는 주황빛을 담은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눈시울이 노을빛처럼 붉어졌다. 민아도 안다. 이 눈물이 슬픈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길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세월을 보내오면서 정말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많이 다쳤다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할 적당한 방법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만 같다. 적당한 방법 같은 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그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었고, 눈 한번 딱 감고 내가 먼저 다가가기도 하였다. 더 이상 미래에 의존하는 내가 아니라 현재에 살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물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미래는 집, 경제와 노후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내면 속에서 존재하는 오로지 자신만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민아는 그렇게 노을빛의 하늘도 보고 모임 때 발표할 새로운 소설책도 조금 읽어 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손님을 네 팀이나 받았다. 가게를 오픈하고 가장 많은 손님이 오신 날이었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밤하늘의 배경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얼음으로 채우고 오렌지주스를 담은 유리컵을 들고 민아의 아지트, 베란다로 향했다. ‘인생이란 뭘까’, ‘어떻게 하면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심도 있는 생각들을 오늘은 하기 싫다. 그리고 앞으로도 안 하고 싶다. 그저 밤하늘이나 구경하고, 소설책과 칵테일 바를 생각하고, 오렌지 주스의 맛을 음미하고 싶다. 물론 이런 것 또한 계획하거나 강박관념을 가지진 않을 것이다.


수많은 경험과 밤마다 잠 못 이루는 생각들 덕에 서서히 민아의 마음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원래 가지고 완벽주의자의 행동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내려놓기만 했는데도 평소 생각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너무 나를 채찍질했나 봐.’ 민아는 혼잣말하며 다시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늘은 별들이 아주 많고 밝구나’라고 생각하던 도중, 갑자기 민아의 머릿속에 스치듯 무언가 떠올랐다.


‘별들은 낮이고, 밤이고 항상 있잖아.’


다음날 오후, 칵테일 바에 다다랐을 때, 문 앞에서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누군가가 서 있었다. 손님인 것 같아 ‘안녕하세요.’라고 말하자마자 휙 뒤도는 한 여자.


‘슬픈 눈을 가진, 아니 가졌었던 나의 첫 손님이었다.’

민아와 첫 손님은 서로를 마주 본 채 별처럼 환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