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어느 한 칵테일 바에서
(*이전과 이어집니다.)
‘딸라앙-’
맑고 경쾌한 종소리가 들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가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구경을 한참 한 뒤에서야 자리에 앉았다. 이때까지의 다른 손님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메뉴판을 볼 때 또한 메뉴를 고른다기보다는 하나하나 정확히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민아는 왠지 무서웠다. 자신이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 해야 되나? 앞머리를 들어 올려 깔끔해 보이는 그 남자는 민아에게 말을 건넸다.
“아, 죄송해요. 제가 무슨 평가하는 사람인 것 마냥 굴었죠? 전 사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나오는 포장마차를 하고 있어요. 이제 1년 다 되어 가네요.”
포장마차? 민아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머릿속이 호기심들로 꽉 채워지는 것 같았다. 뒤이어 민아가 말했다.
“정말요? 전 이제 한 달도 안됐어요. 포장마차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시간 되시는 날, 언제든 놀러 와요. 여기가 워낙 숨어있는 동네라 외로웠던 찰나에 같은 분야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분을 만나서 반갑네요.” 이 동네로 온 지 한 달도 안되었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에 약간 설레었다. 그래도 민아는 되뇌었다. ‘아직까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섣부르게 행동하거나 안심하기엔 일러.”
가게 문을 잠그고 원래 집으로 가야 하는 방향과는 정반대인 길로 들어섰다. 곧 민아의 눈에는 환한 빛들이 보였다. 빨간색, 주황색, 연두색 조명들이 환영하듯 줄 지어 있었고 그 뒤에는 빨간색 천막이 덮여있는 한 포장마차가 보였다. 포장마차 안에는 현대식으로 인테리어가 꾸며져 있는 것 같았다. 들어가서 더 자세히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 혼자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관두었다.
민아는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렇다고 또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이 두렵거나 싫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하고 또 보답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도 쓴다. 하지만 그러다가 무엇이 하나라도 잘못되면 곧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결국 마지막은 회피하게 되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항상 민아의 마음 한 켠에는 이때까지의 상처들이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러한 성격 탓에 어릴 적부터 많은 노력을 해왔다. 성격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삶을 위해. 하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겉으로 보이는 사회성과 인간관계는 나아지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가장 중요한 나 자신, ‘민아’는 점점 더 깊숙한 지하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여러 감정의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가면을 쓰고 있는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사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욕심들을 다 버리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이곳에 온 것이다.
민아는 얼음으로 가득 채운 유리컵에 오렌지주스를 담아 오늘도 베란다로 나왔다. 이곳은 많은 생각들을 하기 위한 장소이다. 물론 포근한 이불에 누워, 잠에 들기까지도 여러 생각을 하지만 베란다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베란다에서 하는 생각들에는 조금 더 희망이 섞여 있달까? 이렇게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놓는 것은 살아가는 데에 필수 요소인 것 같다. 꼭 집 안이 아니어도 된다. 어떤 공원의 어떤 벤치, 어떤 카페, 어떤 학교 운동장. 민아의 아지트 또한 독립하지 않았다면 바깥의 한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민아는 시원한 주스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 생각했다.
‘오늘은 별이 좀 보이는구나.’
(*다음과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