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라 그런지 3일 내내 비가 오고 있다. 사실 난 ‘비 오는 것을 좋아한다.’며 여기저기에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내가 뱉은 이 말에는 모순점이 숨겨져 있다. 비 오는 것을 좋아한다는 기준은 바로 ‘집 안’에 있을 때이다. 정작 내가 바깥에 나가야 할 날에 비가 온다면 당연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여행 가는 날이면 더더욱 더. 이렇듯 남들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 하는 말을 할 때에는 스스로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해 본 후, 어느 정도 신중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무튼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왠지 맛있는 음식(=사실상 배달음식)이 당겼지만 없는 돈을 쓸 수는 없었기에 집에 남아있는 재료들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간장 양파 조림, 할머니가 보내주신 김치, 간장, 참기름, 소금, 계란, 케첩이 오늘 저녁의 재료이다.
배고팠던 상태라 그런가, 생각한 것 이상의 맛이어서 나름 만족스러워 웃음이 절로 났다.
볶음밥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디작은 열정을 느꼈고, 맛을 보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꼈다.
완벽주의자 성향이었던 나는 하루를 큰 성취감들로 보내야만 알차게 보낸다고 생각을 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 성향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 종종 나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하곤 한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많이 변화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노력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행복을 바라지만 사실 행복이란 건 기준을 세우기가 무척 애매한 것 같다. 난 행복이 돈과 같다고 생각한다. 돈 또한 얼마나 있어야지 내가 살아가는 데에 충분한지 아닌지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행복하다’라는 말에도 찬성한다.
이러한 이유로 돈과 같이 생각했을 때, 행복도 가지면 가질수록 자신의 성에 차지 않고 더욱 욕심이 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도 생각을 조금만 전환해보기로 했다. 물론 ‘행복할 필요 없다.’, ‘행복해지지 말자.’라는 뜻은 아니다. 행복의 기준이 모호해 끝도 없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저 웃자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진심으로 웃게 되면 일시적인 스트레스는 사라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트레스는 평생토록 가져가게 될 감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웃음이라는 감기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쓰다듬을 수 있게 웃기 위한 일을 하나씩이라도 실천해보자.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 먹기, 좋아하는 노래 듣기, 책 읽기 등... 이렇게 소박해도 되나? 할 정도의 무언가도 괜찮다. 당신이 그 일로 인해 웃는다는 전제 하에.
오늘의 나는 ‘볶음밥’ 덕분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