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대신 평범함을 택한 뱀파이어
<모비우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무난'하고 '볼만'한 영화이다. 크게 지루함을 주는 순간은 없지만, 그와 동시에 특출나거나 두드러지지도 않는, 이상한 균형(?)을 맞춘다. 긴장감을 느끼거나, 감정적이어야 할 순간들에도 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몰입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재미도 어느 정도 보장된다. 하지만 오락 영화 기준으로도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하기 어렵다.
영화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들의 표현은 인상적이다. 도시와 건물 사이를 누비며 스피드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퀵실버가 연상되는 연기들이 표현된다. 액션은 훌륭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볼만하다. 뱀파이어들이 날아다니면서 서로에게 주먹질을 해대는 장면, 박쥐를 사용하는 장면들 등등.
액션 면에서 아쉬운 면이라면 더 강렬한, R등급으로 갔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뱀파이어들이 등장하는 영화인데,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처럼 R등급을 노려 피 튀기는 잔혹한 액션을 보여줬으면 했다. <베놈> 역시 R등급으로 갔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소니는 <데드풀> 시리즈와 <로건>의 성공을 보고 나서도 왜 R등급 영화를 만들지 않는 것인가?
또 한 가지, 영화에서 공포적인 요소를 활용한 장면이 두 장면 정도 있는데, 그 호러 요소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이렇게 R등급 액션과 공포 요소가 강했더라면 다른 코믹 북 영화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이 강한 영화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모비우스>는 무난한 액션 영화의 노선을 택했다.
그 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무난한 액션 영화, 감독의 비전이나 본작만의 개성이 결여된 '상품'의 느낌이 강하다. 마블 스튜디오의 MCU 영화들이 종종 각 영화들이 개성이 약하며 전부 비슷비슷하다는 등의 이유로 많은 영화감독들, 비평가들에게 비판을 받지만 <모비우스>는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상품'의 느낌이 강하다.
영화가 촬영된 방식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대규모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슈퍼히어로 영화니 어느 정도 제작비가 들어갔을 것이고, CG 퀄리티 면에서 그렇게까지 나쁜 인상을 받지 않았지만 무난함을 택한 영화인 만큼 촬영과 색감도 밋밋하고 평범하다. 기억에 남거나 멋있는 숏이 두 개 정도 있지만, 그것마저 CG 떡칠을 해놓은 숏들이다. 몇몇 부분에서 B급 영화의 향기도 난다.
본작의 서사 역시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다. 너무 간단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 이러한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장점,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간단한 내러티브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다른 맛이 있다. 실제로 같은 소니 유니버스의 <베놈> 시리즈도 2000년대 히어로물의 느낌을 살려 흥행에 성공한 점을 생각해 본다면. 다만 <모비우스>는 <베놈> 만큼 돈을 벌지는 못할 것 같다.
자레드 레토의 연기력은 조커 시절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모비우스>에서는 주인공이니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의 굴욕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맷 스미스가 연기한 악역은 기대와 조금 달랐다. 가끔씩 가다가 맷 스미스가 연기하면서 재밌었겠구나 하는 장면들도 나온다. 하지만 캐릭터 면에서 칭찬을 하기 어렵다.
주인공 모비우스와 악당 마일로가 '그나마' 나을 뿐, 그 둘을 포함해 그 누구도 캐릭터 아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모비우스와 마일로도 그들의 서사나 갈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있는 게 어디야'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주인공 모비우스와 악역 마일로를 제외하면 '캐릭터'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빈약한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잊을만 하면 얼굴을 비추는 두 형사 스트로드와 로드리게즈는 모노톤의 대사들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모비우스와 마일로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인 자레드 해리스의 캐릭터도 밋밋하다. 히로인 마르틴 박사 역시 기억할 만한 캐릭터성이 없을 뿐 아니라, 그녀와 모비우스의 로맨스는 이입이 어렵다. 얼마 전 <더 배트맨>의 유일한 단점 중 하나로 배트맨과 캣우먼의 빈약한 로맨스를 뽑았는데, <모비우스>의 로맨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 '설마 이렇게 끝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화가 굉장히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 듯 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서 두 개의 쿠키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이 두 쿠키 영상의 내용을 본작의 감독이 개봉 전(!) 인터뷰에서 스포일러를 해 버려서, 무엇이 나올 지 이미 아는 상태에서 감상했다. 해외 시사회평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쿠키 영상을 혹평했는데, 개인적으로 혼란스럽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프닝 크레딧에 이어 엔딩 크레딧도 디자인과 색감이 예뻐서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리뷰를 쓰다 보니 단점 위주로 많이 언급하게 되었지만, 재미가 아예 없었다고 하긴 어렵다. 킬링타임용으로 한 번 보고 마는 오락 영화. 보는 도중에는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지만 보고 나서 얼마 안 가 머릿속에서 증발해 버리는 영화이다. 이미 쿠키 영상에서 중요한 떡밥을 뿌려서 어느 형식으로든 모비우스가 다시 등장할 것 같기는 한데, <모비우스>의 시리즈화 가능성은 잘 모르겠다. 자레드 레토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여전히 히어로물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기엔 아직 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