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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Nov 18. 2023

<수어사이드 스쿼드>, 숨겨졌던 제작사의 압박

마고 로비의 할리 퀸, 원래는 어딘가 다른 모습이었다

DC 확장 유니버스의 2016년작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참혹한 혹평을 받음과 동시에 이후 <저스티스 리그>와 마찬가지로 제작사의 간섭과 압력으로 망가진 작품으로 인식됩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혹평 이후,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하기 위해 원판 영화를 재편집하고, 유머를 의식한 재촬영을 강행하는 등이 바로 그것이었죠.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부분들 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제작사의 간섭 역시 존재했습니다. 보다 제작 초기에 이루어진 간섭이었죠. 어찌 보면 굉장히 사소한 요소였지만, 이것에 대한 제작사의 집착, 그리고 그 파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바로 할리 퀸의 속옷과 관련된 간섭이었죠.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은 하얀색 셔츠를 입고 그 아래 빨간 브래지어를 착용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원래 모습은 그와 달랐습니다. 제작 초기 단계 할리 퀸의 디자인을 담은 컨셉 아트가 영화 개봉 후 공개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처음 모이는 장면에서 할리 퀸의 모습을 담은 미공개 스틸 역시 공개되었지요. 컨셉 아트에서 할리 퀸은 빨간색과 파란색 투톤인 가죽 브래지어를 입고 있는데, 컵 아래쪽으로도 옷감이 내려오는 등 일반적인 브래지어보다 피부를 많이 가립니다. 미공개 스틸에서도 이 옷을 입기를 기대하는 등, 미소를 지으며 브래지어를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허나 여기서 제작사 워너 브라더스의 개입이 진행됩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원더 우먼 이후 두 번째로 데뷔시키는 주요 여성 캐릭터가 할리 퀸이었죠. 그런 만큼 워너 브라더스는 할리 퀸을 원더 우먼뿐만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과 어떻게 차별화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죠.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할리 퀸의 성적인 매력과 측면을 부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여성 슈퍼히어로가 그다지 많지 않은 시기였고, 그나마 있는 블랙 위도우나 스칼렛 위치, 원더 우먼은 노출을 최소화한 채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0년대의 캣우먼, 엘렉트라, 인비저블 우먼, 그리고 첫 등장 시의 블랙 위도우 등 초기 여성 히어로들은 배가 노출되는 배꼽티를 입고 등장하거나, 브래지어 등 속옷을 노출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죠. 성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할리 퀸을 통해, 워너 브라더스는 여성 캐릭터의 측면에서 다른 경쟁사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끌어모으기를 기대했습니다. 자연스레 남성 관객들의 시선과 인기를 끌기 위한 전략이었지요. 그래서 이미 컨셉 아트가 완성되고 촬영마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워너 브라더스는 할리 퀸의 복장에 관한 몇 가지 지시 사항을 제안하게 됩니다.


첫째, 할리 퀸은 위에 나타난 것과는 다른, 일반 여성들이 입는 푸시업 브래지어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브래지어의 색깔은 분홍색이나 빨간색처럼 톡톡 튀고 할리 퀸의 성격을 반영하는 색깔이어야 했죠. 둘째, 그런 브래지어가 비치는, 하얗거나 얇은 셔츠를 입어야 했습니다. 셋째, 셔츠를 벗고 브래지어를 노출하는 장면이 적어도 한 장면은 요구되었죠. 넷째, 할리 퀸의 옷이 물에 젖는 장면 역시 요구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속옷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였겠죠. 다섯째, 브래지어를 풀고 벗거나, 착용하는 장면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중 최소 네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죠.

언급했다시피 캐릭터들의 디자인이 이미 완성되고 초반부 촬영이 진행된 상황이었지만, 할리 퀸이 본 코스튬을 입는 장면은 많이 촬영되지 않았기에, 변경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다섯 가지 조건 중 첫 네 가지가 반영되었지요. 할리 퀸은 빨간색 푸시업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70년대 가수 데비 헤라의 영향을 받은 하얀 셔츠도 빠르게 디자인되었습니다. 할리 퀸이 셔츠를 입으면서 브래지어를 노출하는 장면 역시 촬영되어 추가되었습니다. 할리 퀸이 기존 브래지어를 입고 찍은 장면은 재촬영되거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빨간색 브래지어를 추가시켰지요.


그렇게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일부 변경 사항들을 반영한 채 촬영을 이어 나갔습니다. 영화의 본 이야기와 주요 장면들, 액션 장면들을 촬영해 나갔지요. 하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아직도 확실치 않은 정보이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다섯 번째 장면인 브래지어의 착용 및 탈의 씬 역시 촬영할 것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할리 퀸을 연기하는 마고 로비가 과도한 노출에 부담을 느껴 거부했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집을 해서 결국 할리 퀸이 셔츠를 입는 장면 직전에, 그녀가 감옥에서 입던 회색 브라를 벗고 빨간 브래지어를 차는 장면이 촬영되었습니다.


하지만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는 PG-13 등급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고,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구체적인 장면은 편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워너는 곧 PG-13 등급의 영화와 별개로 R등급 확장판을 공개해 성인 팬들을 노려 추가적인 수익을 얻는다는 전략을 떠올렸고, 할리 퀸이 브래지어를 입는 장면을 R등급판에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할리 퀸의 가슴 노출 장면을 짧게 촬영했다는 루머가 퍼지기까지 했죠. 가슴 노출 장면 역시 R등급판에 독점으로 추가될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의 진위 여부는 불확실합니다.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브래지어만을 입고 나오거나, 아예 알몸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마고 로비이기에 노출 자체에 부담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워너 브라더스의 계속되는 집착과도 같은 간섭에 부담을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마고 로비는 <더 울프..>에서 과격한 노출을 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고급 브랜드의 속옷을 광고하는 모델이 된 느낌이 들어 우아하고 자랑스러웠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카메라가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클로즈업하거나 노골적으로 훑는 장면이 많아서 불편함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잘 묘사하냐 보다, 어떻게 성적으로 부각할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큰 불편함은 촬영 과정에서 있었습니다. 짧게 브래지어를 노출하거나 벗는 장면이었다면 다른 문제였을 텐데,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할리 퀸은 하얀 셔츠 아래로 브래지어가 비쳐야 한다는 워너 브라더스의 구체적인 조건이 있었죠. 때문에 마고 로비는 거의 영화 촬영, 그중에서도 액션 씬 내내 브래지어를 입고 있어야 했죠. 보통 액션 영화나 슈퍼히어로 영화를 촬영하는 여배우들은 스포츠브라를 입고 촬영에 임합니다. 여성들이 운동을 할 때 스포츠브라를 입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격한 액션씬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스포츠브라를 착용하는 것이죠.


몇 달 전 <더 마블스>의 예고편이 공개되었을 때, 할리 퀸과 마찬가지로 하얀 상의를 입은 캡틴 마블의 브래지어가 비치지 않자, 어떤 속옷을 입었냐는 팬의 질문에 브리 라슨이 직접 제작진이 특수한 속옷을 자체 제작해 입었다는 것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달랐습니다. 워너 브라더스의 조건, 그리고 할리 퀸의 얇은 복장 상 마고 로비는 스포츠브라 대신 푸쉬업 브래지어를 하고 액션씬들을 촬영해야 했습니다. 마고 로비는 노골적인 노출이나 대상화 장면보다 이렇게 브래지어를 입고 액션씬을 촬영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브래지어의 답답한 착용감만으로도 불편한데, 거기에 뛰고 달리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액션씬을 촬영해야 했죠. 특히 할리 퀸은 영화에서 몸을 회전하는 등 화려한 아크로바틱 액션을 선보이는데, 그런 장면들 중 어깨를 들어 올리거나 가슴을 피는 부분을 촬영하면서 등의 브래지어 끈이 풀리는 경우가 많아 마고 로비가 고생했다고 합니다. 끈을 다시 채운 다음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촬영해야만 했죠. 실제로 CG를 사용해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은 몇몇 짧은 장면에서는 마고 로비가 스포츠브라를 입고 촬영한 채, 후반 작업으로 빨간 브래지어를 입혔다는 말도 전해지죠.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비록 성공을 했으나 비평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촬영 과정에서 이런 불편함을 겪은 마고 로비는 후속작 <버즈 오브 프레이>나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 퀸의 복장과 관련된 결정권을 가지게 됩니다. 실제로 <버즈 오브 프레이>에서는 할리 퀸의 몸을 노골적으로 훑지도 않고, 푸쉬업 브래지어 대신 스포츠브라나 브라렛을 입고 등장합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아예 노출을 하지 않죠. 그래서 <수어사이드 스쿼드> 시절 때 내린 워너 브라더스의 간섭 결정이 과연 옳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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