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es from Underwater - 물과 바다 판타지 소설
폭풍우가 치고 비가 거센 가을날 밤이었다. 기다란 코트를 입은 여성은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빨랐으며, 모자로 가려진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함과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녀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에리였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세차게 문을 닫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불어 문이 닫힌 듯했다. 에리는 즉시 커튼을 치고 외부로 통하는 창문과 통로를 차단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빗물 범벅이 된 모자와 코트를 벗고 땅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에리가 코트 아래 입은 회색의 터틀넥 셔츠는 역시 조금 젖어 있었다. 상황이 조금 정리된 듯한 상황에서, 에리는 침을 꿀꺽 삼킨 후 자신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에리가 천천히 들어선 방의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거울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에리는 멈추지 않고 거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거울을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했다. 거울을 향해 걸어가는 와중에도 에리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는 등,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공포를 이겨내고 거울을 바라봐야만 했다.
마침내 에리는 거울 앞에 똑바로 섰다. 에리는 호흡을 진정시킨 다음,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에리가 거울에서 처음 본 것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 그리고 상반신은 이상한 점이 전혀 없었으나, 그 아래 자신의 형상은 실제 모습과는 달랐다. 마치 물속을 바라보는 듯 일렁이는 거울 속 자신의 형상은, 물고기의 꼬리를 하반신으로 가지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은 인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상한 거울 속 자신의 모습, 수면과 같은 거울에 비친 인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에리의 몸은 서서히 떨렸다. 에리는 거울에서 초현실적이고 괴상한 모습을 볼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자신의 두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의 감정은 형용할 수 없었다.
거울 안을 말없이 바라보던 에리는, 천천히 자신의 터틀넥 셔츠를 벗었다. 셔츠 아래로 그녀는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 브래지어를 입고 있었다. 속옷 차림이 되자 비 오는 날의 추위와 으스스한 분위기가 그녀의 몸을 차갑게 감쌌다. 셔츠를 벗은 에리는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 인어 자신은 실제 자신을 따라 셔츠를 벗어 브래지어를 드러낸 상태였지만, 인어 자신은 인간들이 입는 브래지어가 아니라 동화 속 인어들이 입는 조개와 진주로 만든 브래지어를 입고 있었다. 조개 브래지어와 꼬리 하반신까지, 거울 속 자신은 이제 완벽한 인어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 거울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신이 보는 인어의 형상이 무엇인지 에리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마치 거울에게 유혹되듯, 거울이 그녀를 부르는 듯 에리는 거울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에리가 거울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거울 표면의 습기와 흐르는 물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고 들리는 듯했다. 그 물기와 소리는 세차게 내리는 비와의 것과 구분이 불가능해 그를 착각한 것일 수도 있었으나,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에리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안개와 폭풍우로 가득 찬 바깥처럼 에리의 마음과 기억 역시 흐릿하고 난잡했다.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에리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거울로 가져갔다. 이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무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지시를 내리는 듯했다. 그녀의 손과 거울의 표면이 맞닿는 순간, 에리는 차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차가움 다음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느껴 본 적 없는 그 감정은 자신의 지식과 기억 사이사이를 헤집으며 에리 자신을 더 깊이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했다. 에리는 팔을 거울 깊숙이 집어넣었으며, 곧 상반신과 하반신까지 거울 속으로, 수면 아래로 집어넣었다. 인어 에리와 인간 에리가 맞닿으면서 표면에서 사라졌으며, 에리가 거울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의 모습은 방 안이나 거울 안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에리가 흔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진 후, 거울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 거울은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으며, 거울의 깨진 유리, 깨진 수면 사이로 물이 홍수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전생의 인어와 현생의 인간이 거울을 통해 만나게 되면서, 시간의 금이 생기고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