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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May 01. 2024

태양이 없는 행성, 이루스

<아바타>와 <아틀란티스>의 만남. 개성이 담긴 SF 단편.

별들의 아름다움과 광명이 닿지 않는 은하계의 어두운 구석, 그곳에서 홀로 빛을 내는 한 행성이 있었다. 그 행성의 이름은 '이루스'였다. 수백만 년의 시간 동안 은하의 시선 아래 놓이지 않는 이곳에서는 거의 영원한 밤이 흐르곤 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유성이나 혜성만이 이루스의 하늘을 며칠 동안 밝게 비출 뿐이었다. 태양의 빛을 받지 못하는 이루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박하고 단조로운 행성이 아니었다. 이곳에서도 광활한 생물종들이 존재했다. 행성 중심에 있는 거대한 호수이자 바다, '생명의 분수'에서 시작된 수많은 생명들은 이루스 전체로 빠져나가 평화로우면서 아름답고, 원대한 자연의 대서사시를 써내려갔다. 그런 대자연 속에서, 인간형의 몸과 팔다리를 가진 이루스인들은 자연과 공존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대자연의 순환 고리와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고, 그 속에서 다른 자연물과 함께 조화를 이루었다. 이루스의 자연물과 동식물은 자체적으로 빛을 내뿜었으며, 덕분에 이루스에는 완전한 어둠이 내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광활한 이루스 행성의 수많은 숲 중 한 곳에서, 두 존재가 쓰러진 나무와 풀잎들을 밟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몸은 차가웠고, 무거웠으며, 이루스에서는 이해되지 못할 언어와 수단으로 소통을 했다. 그 소통은 두 존재 사이뿐 아니라 하늘 높이, 이루스의 대기 위에 떠다니는 검은 무언가와도 이루어졌다. 이루스인들은 하늘의 이 무언가를 '검은 바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것들은 이루스의 것이 아니었다. 생명력이 넘치는 이루스의 숲 한가운데서, 이 존재들은 주변과는 결코 섞여들 수 없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이들은 이루스의 빛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듯했다. 팔과 다리가 달린 이들은 이루스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자연의 자식들이 아닌 차갑고 탐욕스러운 실험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들이었다. 이루스인들과는 달리 손에는 창이나 돌이 아닌 총기를 들고 있었으며, 이루스의 것과는 다른 불빛들을 몸체에서 내뿜고 있었다.



"BH-34호, 현재 35호와 함께 이동 중. 현재까지 아무 이상 없음."



자신들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인공적인 목소리로 빨간 헬멧을 쓴 기계가 말했다. 파란 헬멧의 다른 기계는 말없이 묵묵히 옆을 걷기만 했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하늘 위의 검은 바위는 빛을 내지 않는 별과도 같이 하늘에 박혀 있었다. 그 뚜렷하고 정적인 모습은 이루스인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불어넣었다. 이 숲에서는 기계 단 두대만이 걷고 있었지만, 이루스 행성 전체에는 더 많은 기계들이 내려와 있었다. 이들은 수많은 목적을 가지고 이루스로 내려왔지만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단 하나, '생명의 분수'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이었다.



수 시간을 걷기만 했지만 기계들의 힘은 바닥나지 않는 것 같았다. 장애물이 있더라도, 주변에 작은 동물들이 지나가더라도 기계들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육중한 회색 금속이 흙과 모래를 밟았으며, 그와 동시에 이루스의 표면에는 작지만 지금껏 생기지 않았던 자국과 상처들이 하나씩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기계가 숲에서 별일 없던 여정을 나아가던 중, 갑자기 빨간 헬멧의 BH-34호가 걸음을 멈추었다.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춘 34호는 고장이라도 난 듯, 어색한 자세로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되었다. 35호는 34호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고서는 함께 멈춰 섰다. 35호는 34호에게 어떠한 이상이 있는지를 재빨리 알아내기 위해, 34호의 몸체를 재빠르게 살폈다.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허나 35호는 여전히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붙어, 마치 동상이 되어버린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34호의 몸을 살피던 35호는 사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역시 얼어붙어 버렸다. 기계의 회로와 사고로는 이 상황을 쉽게 인식하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 발목이 묶인 채로, 34호의 불빛과 전원이 꺼졌으며 뒤이어 35호도 그 상황에 대처할 틈 없이 불빛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단단한 금속이 땅의 흙 위로 거칠게 쓰러지며 육중한 소리가 났다. 두 기계체는 이루스의 숲 속에 쓰러진 금속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BH-34호와 35호의 빛이 꺼지고 땅바닥에 쓰러지자마자, 멀지 않은 덤불 속에서 짧은 탄식과 함께 누군가 숨을 내뱉었다. 곧이어 그 덤불 사이에서 무엇이 땅에 부딪히는, 작지만 뚜렷한 소리가 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덤불 사이에 쓰러졌던 인물이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어섰다. 덤불을 뚫고 몸을 드러낸 인물은 한 젊은 여성이었다. 얼굴과 팔에 희미하게 빛 무늬가 나 있는 그녀는 이루스인이었다. 갈색의 피부에 은빛으로 빛나는 머리를 가진 그녀는 몸의 무늬보다도 푸르게 빛나는 두 눈을 가졌다. 그녀는 짙은 파란색의 두건을 묶어 가슴을 가리고 있었으며, 이루스인들의 전통 치마를 입고 있었다. 옷으로 가려지지 않아 드러난 허리는 가늘었으며, 배에는 선명한 복근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이라였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라는 숲에 쓰러진 기계들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녀의 마법으로 작동을 멈추게 한 기계만 그날 다섯 대였다. 마법의 영향을 받은 기계들은 대부분 영구적으로 작동을 멈추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동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아이라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아이라가 쓰러트린 이 두 기계는 다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아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이제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라는 생명의 분수 근처에서 외롭게 살아가던 여인이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마법을 얻은 아이라는 자신의 힘에 대한 의문을 멈추지 않았다. 허나 곧 그녀는 자신에게 마법이 주어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늘에 검은 바위가 나타나고, 땅에서는 차갑게 빛나는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차가운 금속 존재들에게 반항하거나 공격하는 동물들과 이루스인들은 풀 베이듯 쓰러져 갔다. 아이라는 자신의 마법의 강도와 그 범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런 처참한 광경을 본 이후에도 저항을 멈추지 않은 그녀는 자신의 마법으로 금속 존재들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이라는 이루스의 대자연이 금속인들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자신에게 힘을 주었다고, 자신은 선택받은 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녀는 이루스 행성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떠났다. 자신의 행성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나타난 금속인들에 맞서 저항하고, 오래전 자신의 가문을 저버린 이루스의 왕족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과거의 잘못이나 나쁜 인연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루스의 왕족을 만나 힘을 합쳐야만 했다.



기계들이 쓰러진 곳 근처의 나무에서 열매를 하나 따서 먹은 그녀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루스에서는 모든 자연물이 서로를 돕고, 잠자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해 준다. 이 모든 것이 순환하고 유지된다. 이 신성하고 아름다운 과정을 금속인들이 망가뜨리도록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라는,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자 희망을 지울 수 없었다. 이 행성 어딘가에 자신과 같은 능력을, 마법을 가진 이가 더 있을 것이라는 것. 이루스의 대자연이 그 자식들, 이루스인들에게 내린 능력이 하나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아이라는 이 마법 능력이 자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힘을 결코 헛되이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 모든 생각들을 머릿속에 담은 채, 아이라는 생물들이 빛을 내 밝혀 주는 숲 속을 말없이 걸어 나갔다. 그녀 앞에는 여전히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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