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숨과 함께 여인은 잠에서 깨어나듯 정신을 차렸다. 숨을 들이쉬면서 기도와 폐 안으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으며, 그 촉각과 함께 독특한 향기가 가슴과 머리에까지 전해졌다. 여인은 쇼핑몰의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것이 그녀의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기억의 잔상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뚫린 기억의 터널 속에 서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생생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여인이 쇼핑몰에 들어온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님이 분명했다. 단순히 오래 전의 일이 아닐 뿐 아니라, 방금 전 막 일어난 일이었다. 여인은 지금 막 쇼핑몰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온 이후였다. 하지만 그녀 앞에 펼쳐진 쇼핑몰의 내부는 무엇인가 다르고 이상했다.
늘 사람들로 끊임없이 북적이던 쇼핑몰은 텅 비어 있었다. 평일과 그리고 휴일에도 마찬가지로 쇼핑몰은 사람들로 꽉 차 있고는 했다. 쇼핑몰이 문을 닫는 자정의 시간과 문을 여는 이른 새벽의 시간에는 사람들이 몇 명만 남아 점점 외로워지는 쇼핑몰을 거닐고는 했지만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이 이렇게 텅 비어 있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발소리와 대화 소리, 물건들이 부딪히고 움직이는 소리까지 사람들과 함께 완전히 없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소리가 사라지고 난 자리를 채운 것은 공허함이나 침묵, 고요함이 아니었다. 쇼핑몰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문을 닫기 직전의 상황처럼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마치 귀가 아닌 마음속으로 들리는 배경 음악이나 노래를 틀어 놓은 듯, 틈이나 공허를 남기지 않고 쇼핑몰 내부의 공기를 가득 채운 무엇인가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해진 쇼핑몰의 모습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이것은 여인이 쇼핑몰에 들어서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알아챘던, 사람들의 부재와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의 존재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쇼핑몰 내부의 모든 물체들은 흐릿하면서도 반투명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계단에서부터 시작해 난간과 손잡이, 저 멀리 보이는 간판들과 불빛들은 모두 특수한 막이나 베일에 둘러싸인 것처럼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색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인은 처음 보는 이런 광경을 머릿속으로 되새기고 이해하려 하면서, 얼마 후 그것들이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속에 잠긴 물체들은 빛의 굴절로 인해 그 형상이 조금씩 일렁거리고, 수면에 비친 빛에 가려져 오묘하면서 은은하고 신비로운 모습을 가진다. 모습이 흔들리고 일렁거리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쇼핑몰 내부의 모습은 그것과 거의 똑같았다.
아니면 특수한 코팅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특수한 종류의 광원을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여인은 쇼핑몰 내부의 모습에 매료되어 주위를 천천히 훑어보면서 마침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물의 손길이 감싸고 있는 듯한 겉모습과는 달리 바닥은 젖어 있지 않았다. 깨끗하고 딱딱한 바닥을 밟으면서 걸음들을 하나씩 이어 가자 여인의 하이힐이 바닥과 만나면서 또각또각 뚜렷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소리는 쇼핑몰 내부에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메아리는 쇼핑몰에서 들리던 소리들의 울림과는 결코 같지 않았다.
여인은 자신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쇼핑몰에 방문했음을 기억해 냈다.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인은 자신의 이름, 이 쇼핑몰의 이름,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몇 번씩이나 방문했고 얼마나 친숙한 장소인지 등의 내용조차 역시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없는 호수처럼 알 수 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이 누군지 잃어버린 여인은 낯설지만 묘한 이끌림이 있는 쇼핑몰의 중심부로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지우개로 지운 듯 머릿속 기억의 일부가 사라지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진 듯한 상황이었지만 여인은 당황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곤두세우고 신경을 갉아먹는 감정들은 따뜻함의 손길과 입김에 닿은 얼음처럼 녹아 그녀의 마음에서 빠져 나간 것 같았다.
쇼핑몰은 춥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여인으로 하여금 몸과 팔을 움츠리도록 하는 기운이 있었다. 공기는 한여름처럼 습하지도 한겨울처럼 건조하지도 않았으며,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일 없이 잔잔했다. 쇼핑몰에 있는 무언가가 혹은 어떤 기운이 여인의 옷과 피부 아래를 파고들어 촉각이 아닌 그녀조차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을 자극하면서 차가움 비슷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았다. 여인은 드넓고 밝은 쇼핑몰에서 시선을 돌려 자기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옷은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흡사 물을 흠뻑 머금은 듯한 모습이었지만 물의 촉촉함이나 젖은 촉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답답하거나 불쾌한 것도 아니었다. 여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쇼핑몰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지만 조용하거나 고요하지 않은 쇼핑몰의 중심부에는 탁 트인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에 들어서면 바닥이 푹 꺼지면서 깊이 파인 공간이 넓게 나타났다. 한 칸의 거대한 계단과도 같은 그것으로 내려가면 여인의 무릎에서 허벅지 정도의 깊이가 되었다. 이곳이 수영장으로 사용되는 장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수영장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얕았다. 공간의 바닥에 발을 내디딘 다음 여인은 하이힐을 벗고 더 자유롭게 이곳을 걸어 다니기로 했다.
깊이 파인 공간의 중심에는 빛을 내는 구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자연스레 구슬에 관심이 쏠린 여인은 그것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여인과 구슬 사이에는 여인의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연관성이 있는 듯했다. 여인은 구슬에게 이상한 끌림을 느꼈다. 마치 자석의 다른 두 극처럼 말이다. 하지만 구슬은 움직이지 않고 바닥에 가만히 놓여 있었으며 그에 가까이 움직이는 것은 여인의 몫이었다. 그녀는 말로 설명하거나 머릿속에서도 완전히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형상화할 수 없었지만 그 연결을 느끼고 있었다. 구슬에 다가가자 그것을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구슬의 크기는 작은 야구공 정도의 크기였다. 그것의 표면은 깨끗하면서도 다양한 곡선과 문양, 색조 등이 어우러져 마치 우주에서 지구의 대륙과 바다와 대기를 바라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구슬은 금색과 노란색이 섞인 듯한, 혹은 그 두 색깔 사이에 위치한 특정 색조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이아몬드나 루비, 혹은 사파이어나 오팔 같은 노란색 보석처럼 고급지고 값비싼 물건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알 수 없게 신비로운 분위기에 안개처럼 둘러싸여 있는 구슬이었다. 여인은 그것을 만지기 위해 몸을 아래쪽으로 숙이고 손을 뻗었다.
구슬의 표면에 나타난 얼룩 같은 색과 알 수 없는 형상들의 결합은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인은 구슬을 계속해서 노려보면서 그것의 안개 같은 표면 사이로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베일이 투명해지듯, 여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정보였으며 단순 지식이나 사실뿐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으로 이루어진 시각적인 정보였다. 그것은 정보를 나아가 감정과 인상들을 담고 있었으며 밝게 타오르는 불에 손을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뚜렷한 따뜻함을 내뿜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구슬은 갑자기 여인의 손에서 하늘 위로 솟아올라 쇼핑몰 2층 안쪽의 어딘가로 날아갔다. 여인은 구슬의 갑작스러우면서 재빠른 움직임에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움츠렸으나, 짧은 순간 이 모든 것이 일어나는 와중 그녀의 시선은 구슬의 움직임을 따라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았다. 구슬은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의 왼쪽으로 날아갔다. 쇼핑몰 1층의 이상하리만큼 얕은 이 수영장에는 여인 혼자만이 다시 외롭게 남았다. 그녀는 방금 막 일어난 일을 계속해서 해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구슬 안에 담긴 것은 분명 기억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구슬의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본 기억의 너머로는 더욱 원대하고 위대하며 특별한 것이 있었다. 구슬을 들고 있던 손끝을 통해 그것의 희미한 향과 맛이 느껴지는 듯했으며, 여인은 그것으로부터 오래된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익숙함과 추억, 오직 그것만이 줄 수 있는 느낌과 감정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은 여인 본인의 기억과 영혼이 분명했다. 그 어떤 확실한 정보 없이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통해서만 내린 결론이었지만 그녀가 알지 못하는 신비롭고 새로우며 오묘한 이곳에서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기존의 지식보다 우선했다.
여인은 계속해서 1층의 남은 부분을 탐험하고 점차적으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위로, 더 높이 더 멀리 걸어 올라갈 수 있었지만 여인은 구슬에 홀린 이상 그것을 잠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 머릿속에 난 구멍들을 채워 나가고, 구슬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여인이 놓인 상황과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그 구슬에 담겨 있을 것 같다는, 혹은 답을 담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그 길을 오르는 데 시발점이 될 만한 것이 구슬에 담겨 있을 것 같았다. 여인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전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하지만 달리지는 않으면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구슬을 따라가고 찾아 자신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뿐 아니라, 여인이 가진 의문과 호기심의 화살은 자신의 바깥 - 쇼핑몰 자체에 대해서도 향하고 있었다. 이곳은 어떤 곳이며 어째서 이런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자신의 감각과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탐험할 수 있는 곳인지. 그리고 그녀가 이곳에서 진정으로 홀로 있는 것인지.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2층에 올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고 그녀는 자기 자신에게 계속해서 돼 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질문들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는 것처럼 지금 그녀가 가진 질문들 역시 위층으로 올라가더라도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어디론가 날아간 구슬과 함께 자신의 기억과 영혼과 질문과 해답들이 모두 심연 속으로 사라져 자신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그녀의 마음속에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시작했다. 여인은 그런 생각들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것들을 다시 구석진 곳으로 치워 버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자신의 깊은 마음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서 나와 이 쇼핑몰, 그녀의 눈앞에 있고 그녀의 발밑에 느껴지는 것으로 초점을 옮겼다. 여인은 한 걸음씩 내딛으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조물에 가려져 있던 다른 기둥이나 간판, 숨겨졌던 쇼핑몰의 구조 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은 계단 주위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에 불이 들어와 있는지도 불확실했다. 죽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탈 수 없고 타서는 안 된다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여인은 계속해서 계단을 걸어 올랐다.
어느새 두 번째 층에 도착한 그녀의 눈앞에는 옹기종기 모여 길게 끝없이 늘어선 쇼핑몰의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급진 옷이나 보석, 가방들을 파는 듯한 가게들의 이름과 상표들을 확인하려 했으나 여인은 그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간판에서 글씨가 지워져 나가거나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상징들로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쇼핑몰에 들어온 이후부터 이 모든 것이 꿈 같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 이 순간 최대치가 되었다. 이런 것은 정말 꿈에서 볼 법한 상황이었다. 여인은 정신을 집중하며 몸을 꼬집기도 해 보았지만 그녀의 몸이 늘어나거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녀 자신은 실제로 존재하며 깨어 있는 상황이었다. 여인은 가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 역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그려진 유리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안쪽에는 옷을 입지 않은 마네킹이 새하얀 얼굴과 알몸을 드러내고 서 있었으며, 진열장에는 크고 작은 구슬들이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여인들은 그 구슬들을 보고 찬찬히 훑어보았다. 구슬들이 내뿜는 빛의 세기는 그것들의 크기만큼이나 서로 달랐다. 구슬이 커질수록 빛의 세기가 커지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손톱만한 구슬이 강한 빛을 내거나 공처럼 커다란 구슬이 희미하고 약한 빛을 내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었다. 빛의 색깔은 대부분 하얀색이었지만 몇몇 구슬들의 빛에서는 노란색과 초록색, 파란색과 빨간색 색조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여인은 그것들을 빠르게 훑었으나 자신이 1층에서 보았던, 빠르게 2층으로 날아갔던 구슬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내뿜던 금색과 노란색이 섞인 빛깔은 여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여기에 진열된 구슬들에서는 그 구슬에서 느꼈던 특별한 이끌림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구슬들이 자기들은 여인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 없이 마음을 통해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구슬들의 안개 너머에서는 자신의 것 같던 기억과 퍼즐 조각을 훔쳐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었지만, 뻣뻣하거나 단조롭지는 않았다. 쇼핑몰 내부와 가게들에는 다양한 형태의 디자인과 곡선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으며 그만큼이나 생생하고 다양한 색깔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단지 대부분의 물체들과 공간들의 색깔이 하얀색과 하늘색, 그리고 파란색이었을 뿐이다.
그 순간 저 멀리서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그녀의 귓가 대신 마음을 타고 들어오던 다른 소리와 분위기와는 달리 확실한 소리로서 그녀의 귓가에 날아와 박혔다. 이곳의 특수한 환경과 마음에 들려오는 소음에 적응되어 있던 여인은 마치 들리지 않는 것을 처음으로 듣고, 보이지 않던 것을 처음으로 본 것처럼 온몸에 짜릿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2층에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을 따라 이어진 안쪽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여인은 소리를 듣자마자 그쪽으로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쇼핑몰의 안쪽에는 주의를 끌만한 특이한 물체나 공간 구조가 없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가게들과 바닥, 그리고 높은 천장이 이어질 뿐이었다. 허나 주의를 기울이자 그 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아주 작고 희미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끊기거나 사라지지 않고 들려왔다. 여인은 그것이 마치 사람의 목소리나 노랫소리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으나 시간이 흐르고 여인의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일수록 그것은 그 형체를 점점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리듬감이 있었으며, 목소리는 여성의 것이었다. 점차 그것은 누군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무슨 언어인지 그리고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귓가에 노래 가사나 말 같은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에는 마음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말 없는 음악소리가 들려 왔다. 귀와 마음을 통해 동시에 서로 다른 성질의 소리를 들으니 그녀는 점점 진정되고 안정감을 느껴 갔다. 누군가 그녀의 귓가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같은 노랫말을 불러 주는 것 같았다. 귀와 마음으로 들어오는 다른 소리가 마음에서 만나 하나의 음악이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음악을 듣는 것이 처음이라 안정감을 느끼는 것인지, 혹은 노래 자체에 알 수 없는 힘이 담긴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음악이 그녀를 어떻게 느끼게 하는지였다. 여인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여인은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겨 갔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쇼핑몰에서 계속해서 걷다 보니 사람을 보고 싶어졌다. 노래를 부르는 여인은 누구일까. 그녀의 귀에 들리는 것이 사람이 부르는 노래가 맞는 것일까. 사람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장치일 수도 있었다. 혹은 그녀가 지금까지 만든 추측 (노랫소리라는 것, 여인의 목소리라는 것)이 전부 틀렸을 수도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면 그 끝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저 멀리, 저 안쪽의 쇼핑몰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사실들은 여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피어오른 이 생각과 의심들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내려갔으며, 여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조금의 경이로움이 나타났다. 여인은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기억과 영혼의 일부를 담은 구슬에 대해서는 서서히 잊어 가면서 안쪽으로 걸어갔다. 쇼핑몰에는 출렁이는 물과도 같은 몽환적인 빛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