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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hill May 25. 2024

두 번째 인어공주 실사영화

V2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직 잠의 기운과 어젯밤의 피곤함에서 완전히 헤어나지 못한 나는 곧바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햇빛의 밝기와 따뜻함으로 보아 적어도 아침 9시는 된 것 같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몸을 뒤틀면서 안경으로 팔을 뻗는다. 안경을 쓰고 나서 창밖을 바라본다.



맑은 하늘. 하얀 구름. 초록 나무들. 좋은 날이다. 하지만 나는 창밖에서 다시 고개를 돌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으로 시선을 가져간다. 휴대폰을 켜니 역시나, 시간은 현재 9시 23분이다. 비밀번호를 눌러 잠금을 연 다음 맨날 하던 것처럼, 아침 처음으로 트위터를 켠다.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사이클, 습관이다. 트위터를 켜니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나는 Discussingfilm 페이지를 들어간다. 내 팔로우 목록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검색창에서 'd' 자만 치니 바로 페이지가 뜬다. Discussingfilm 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트윗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트윗을 읽은 나는 그 순간 번개가 친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또다른 '인어공주' 리메이크 확정.



얼마 전 나왔던 디즈니의 실사 인어공주의 실패 이후 또다른 실사영화가 제작된다는 소식이다. 디즈니에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드는 것인지, 이번은 다른 스튜디오가 제작을 하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가슴이 뛴다. 트윗을 더 읽는다. 이번 리메이크는 백인 여배우가 에리얼 역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댓글에서는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이 뒤얽히고 난장판이 되어 있다. 예상대로다.



원래 아침은 평소처럼 평범하게 흘러가다 점심이 가까워지면 산책이나 나가고 그러는 건데. 아침부터 이런 빅 뉴스가 터져 정신이 확 들게 하다니.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조개 껍데기 브래지어를 하고 유유히 바닷속을 헤엄치는 진저 미녀 인어공주를 볼 수 있다니. 10여 년 전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실사영화를 제작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순간부터 어린 나를 설레고 기다리게 하던 조개 브래지어.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드디어 추억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



트윗에는 뉴스 문구 아래에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아직 배우가 캐스팅되지 않았고 제작 초기 단계지만, 원작과 유사한 이미지를 그릴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번 영화에서 에리얼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에 대한 레퍼런스 이미지가 첨부되어 있다. 아름답고 날씬한 백인 여성. 빨간 머리에 보라색 조개 브래지어. 코스프레 이미지인 것 같았다. 이 모습이 더 퀄리티 있는 복장과 유명한 미녀 여배우를 통해 살아난다니. 여배우는 누가 하게 될까? 나는 두근대는 마음을 느끼면서 댓글을 더 내린다. 그러다가 답글을 읽던 나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와우, 멋진 만우절 농담.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네.'

'이런 걸로 만우절 농담하지 마라.'



이런 답글을 읽은 내 마음속에 쓰나미가 물밀려오는 듯하다. 나는 즉시 핸드폰의 날짜 부분을 확인한다.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채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두 번째 빅 뉴스가 터진다. 쓰나미가 쓸고 지나간 마음 속을 다시 강력한 웨이브가 한번 강타한다. 이렇게 정신을 바짝 뜨게 하고 마음을 뛰게 하는 뉴스가 두번 연속으로 터지다니, 오늘은 참 재밌는 날이다. 쉽게 잊히지 못할 날이다. 트윗을 접고 인스타그램과 다른 뉴스 사이트들을 가 본다. 두 번째 인어공주 실사영화에 대한 소식은 없다. 만우절 농담에 낚인 게 맞다.



이렇게 짧은 소동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나서 상대적으로 차분해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아쉬움이다. 그 짧은 순간 느꼈던 쾌감에 가까운 감정, 그것이 알고 보니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말이다. 두 번째 리메이크에 대해 다시 생각하니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아 아쉬워.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




이상한 꿈에서 나는 깨어난다. 번개가 치거나 회초리를 맞는 것처럼 확, 하고 깨어나는 꿈이 아니다. 얼음이 녹는 것처럼 사르르 사르르,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꿈에서 깨어난다. 정신을 차리고 방금 그것이 꿈이었음을 인지한다. 인어공주 두 번째 실사화. 요즘 인어공주 생각만 하고 지내니 그것이 꿈속까지 침투해 버린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아직 어둑하다. 한밤중에 깬 것은 아니고 해가 뜨기 직전 새벽에서 이른 아침 정도다.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꿈속에서 꿈을 깨고 일어난 것이네. 이런 인셉션은 이전에도 아주 몇 번은 경험해본 적이 있다. 그렇게 꿈속의 꿈에서 깨어나고, 다시 꿈에서 깨어난 지금은 현실임을 느낄 수 있다. 정신, 그리고 몸의 느낌. 피로가 있거나 잠에 아직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정신이 많이 맑아서 어서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은 정도다.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든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나는 꿈속에서 한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루틴, 하루의 시작을 반복한다. 머리맡에 놓여 있던 안경을 끼고 휴대폰의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처음 하는 것은 역시 트위터. 트위터를 켜자마자 Discussingfilm 뉴스가 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올라온 뉴스. 미국과의 시차를 생각하면 그럴 듯하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뉴스다. 나는 둥근 아이콘을 클릭해 Discussingfilm 페이지로 들어간다. 그렇게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천천히 페이지를 내린다. 큰 뉴스는 없다.



그러다가 어제 올라온 뉴스, 인어공주 생각을 계속하고 꿈에서까지 비슷한 상황을 만든 뉴스 트윗을 본다.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 월드와이드 10억 달러 돌파. 후속편 제작 확정'



이에 대해 반응은 역시나 다들 갈렸다. 예상대로다. 유튜브와 영화 커뮤니티에서는 욕하는 댓글이 가득하다. 마치 2019년도에 캐스팅 소식이 처음 들려오던 때와도 같다. 레터박스에서는 '제목 미정의 인어공주 실사영화 속편' 이라는 제목으로 등록이 되었다. 어제 확인했을 때는 '인어공주 2' 였는데. 개봉년도나 줄거리, 감독 등은 없고 캐스팅란에 할리 베일리만 있다.



나는 레터박스와 다른 앱들을 종료한 다음 다시 트위터로 돌아온다. 그리고 Discussingfilm 페이지에서 나와, 인어공주를 마음에서 지운 다음 상관없는 다른 주제의 트윗들을 보기 시작한다. 음악, 글쓰기, 레터박스 관련 트윗들. 웃긴 것이 있으면 코웃음을, 더 생각하거나 조금 중요한 것 같은 트윗은 저장을 누른다. 하지만 이러면서도 한편으로 내 머릿속에는 꿈의 잔상이 남아 있다..... 진저 백인 여배우가 등장하는, 또 다른 인어공주 실사영화라.....




정신이 든다. 나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있다. 방안은 아직 어둡다. 커튼을 쳐서 어두운 것인지 아니면 한밤중이라서 어두운 것인지는 몰라도, 이정도로 어두우면 커튼을 치든 안 치든 해가 뜬 상황일 수가 없다. 아무래도 한밤중에 깬 것이거나 이른 새벽, 아침일 것이다. 꿈속에서 꿈을 꾸고 거기서 또 꿈을 꾸다니. 삼중 인셉션은 살면서 한 번 겪어 본 것 같다. 이제는 두 번째다.



다시 잠에 들려 하지만 역시나, 이렇게 잠과 꿈에서 깬 거면 다시 잠에 들기 어렵다. 알람에 깬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꿈이 끝나고 잠에서 깬 거면 잠을 다 잔 거나 다름없다. 이렇게 삼중 꿈이나 연속 꿈을 꾸고 느껴지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몸과 정신의 피로함이나 마법에 걸린 것 같은 기분도 없다. 숨도 잘 쉬어진다. 이번에는 현실이 맞다. 정말로.



역시나 나는 휴대폰을 보고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네 시. 너무 일찍 일어났다. 일찍 자려고 졸리지 않을 때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한 시간 가량을 씨름하고 나면, 이렇게 생생한 꿈과 함께 새벽에 일어난다. 머리가 활발하게 작동했다는 의미다. 잠이 다 달아났는데 누워 있으면 뭐 해. 나는 유튜브라도 볼 생각으로 안경을 끼고 일어난다.



역시나 트위터를 먼저 보다가, 유튜브로 넘어가 구독 란을 확인하던 나에게 생각이 든다. 근래 인어공주에 대해 집착하거나 많이 생각한 적은 없는데,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꾼 거지. 그런 강한 생각이나 집착은 벌써 몇 달 전이었는데. 무엇보다 인어공주 실사영화는 5억 7천 정도만 벌고 흥행에 실패했는데 (실패했는지 그래도 작은 성공이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인 것은 맞을 것이다.) 왜 10억 달러에 속편까지 얻는 꿈을 꾸지. 내가 그걸 원해서 그런 것일까?



유튜브를 뒤적이다 말고 나는 레터박스를 킨다. 레터박스에서 인어공주 2023년판을 검색한다. 인어공주 2023년판은 내 왓치리스트에 담겨 있었다. 며칠 전 내가 담아둔 이후로. 왠지는 몰라도 이 여오ㅘ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디즈니+를 구독하면 제일 먼저 이걸 보지 않을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유튜브로 넘어가 영상을 보기로 한다. 인어공주 생각은 그만하고 이 새로운 주제로 넘어가 보자. 그러는 나의 마음속에 마지막 인어공주 생각이, 생각이라기보다는 인상이 피어오른다. 할리의 에리얼이 왠지모르게 마음에 들어 가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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