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에서 일어난 일
아쿠아리움의 에스컬레이터를 올라가는 채호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가득했다. 드넓은 아쿠아리움의 내부는 평소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았다. 밝은 조명 없이 거대한 수조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푸른색과 작은 전등 몇 개만이 실내를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두꺼운 유리를 통해서도 물의 냄새와 습기는 완전히 걸러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채호는 초저녁의 하늘과도 같은 짙은 푸른빛의 바닥을 밟으면서 아쿠아리움을 걸어갔다. 관람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멀리 떨어진 작은 해마 수조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여자, 그리고 거대한 창문과도 같은 수조 안쪽을 홀린 듯 바라보는 노부부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관람객도 없었다. 이곳에는 채호를 불쾌하게 하고 그의 심기를 거스르게 할 요소는 없었다. 이곳은 아쿠아리움이었기에 앞서 말한 바다의 향기와 습기가 희미하게나마 느껴졌지만, 그것은 채호의 불편함의 원인이 아니었다. 투덜거리기도 하고 만족스러워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아쿠아리움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오히려, 그가 아쿠아리움에 온 것은 까칠한 자갈밭 같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함이었다.
'흑인 인어공주라니, pc가 제대로 단단히 미쳤구나.'
채호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입 밖으로 말을 내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혼잣말을 소리내어 하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본 그였기에)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그의 말을 들을 사람은 근처에 없었다. 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마 없는 아쿠아리움의 사람들이 그가 혼자 하는 생각을 엿들을 수 있더라도 자신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을 것이라고 채호는 생각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pc충 쓰레기임이 분명할 것이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이 주제는 벌써 며칠 째 채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며칠 전, 하루나 이틀보다는 많지만 일주일에는 미치지 못하는 기간 전 (채호도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실사영화에서 주연 에리얼을 연기할 배우를 공개했다. 배우는 한 흑인 여성 가수였다. 빨간 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진 에리얼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채호를 포함한 사람들,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이 소식에 크게 분노했고, 그들의 댓글과 포스트와 재빠르게 만들어진 영상들은 인어공주의 바다에 몰아치는 거대한 굉음의 쓰나미와도 같았다. 인어공주에 대한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댓글창에서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으며,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채호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벌써 이 주제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마음에 품은 상태였으며, 이미 영상 하나를 제작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쿠아리움에 들린 것은 푸르른 바다의 모습과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머리를 식히기 위함이었다. 물론 아쿠아리움이 재현한 바다의 모습과 생태계가 인어공주 영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만의 인어공주 에리얼의 모습을 떠올리고 공상에 빠질 듯한 마음도 있었다.
채호는 벌써 아쿠아리움의 절반을 지난 상태였다. 조금만 더 가면 아쿠아리움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많은 물고기와 산호초와 상어와 고래를 담고 있는 수조가 있었다. 물론 가장 거대한 유리 벽 역시 이 수조의 차지였다. 그 수조의 이름은 '아틀란티스 수조' 였으며 아쿠아리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수조의 바닥에는 자갈과 바위와 모래 위로 으리으리한 아틀란티스 구조물이 있었다. 물고기들이 지나가거나 휴식을 취하게 하고 관람객들에게는 멋진 눈요깃거리 광경을 연출하기 위한 구조물이었지만 그 외에 다른 목적도 있었다. 채호가 굉장히 관심있어 하는 목적이었다.
아틀란티스 수조에서는 이따금씩 인어 쇼가 열렸다. 인어공주 코스프레를 한 수중 무용수와 배우들이 수조에서 작은 연극 시연, 마술, 그리고 수영 시범 등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그 쇼가 열릴 때면 수조 앞은 마치 영화관이 된 듯 사람들로 꽉꽉 찼다. 영화관처럼 조용히 하거나 휴대폰을 끌 필요도 없었기에 환호하는 아이들과 사람들의 목소리,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와 휴대폰의 소리와 빛이 수조 앞을 가득 채웠다.
아틀란티스 수조 앞으로 오니 예상대로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아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채호는 사람들을 확인한 다음 수조 안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물고기 떼들은 헤엄을 치고 있었으며, 수조 아래쪽에 황금 아틀란티스 궁전을 연상시키는 구조물 역시 있었다. 화려한 조명 및 거대한 고래나 상어가 보이지 않았기에 영상으로 보던 것처럼 웅장한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여전히 수조의 크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들었다. 채호는 걸음의 방향을 돌려 수조 앞쪽으로 더 가까이 걸어갔다. 오늘은 인어공주 쇼가 있을까, 아름다운 외모와 몸을 가진 인어공주를, 내가 원하는 모습의 인어공주를 눈앞에서 볼 수 있을까. 이 수조와 유리가 바로 내가 원하는 인어공주 영화를 보여줄 영화관 스크린이 되어줄 것인가. 채호는 수조에 가까운 위치로 걸어간 다음, 작고 빼곡하게 적힌 물고기 종의 설명 판자 위에 적힌 더 큰 글씨를 바라보았다. 그것을 다 읽는 순간에는 채호의 갈망은 순식간에 동화 속 인어공주처럼 물거품이 되어 있었다.
'공지! 아쿠아리움 청소와 공사로 인해 2주간 인어공주 공연은 중지됩니다'
공지 판자를 읽자 채호의 마음속에 실망감이 쓰나미처럼, 화산처럼 솟아올랐다. 마음속에서 터진 폭탄의 연기가 입밖으로 올라와 탄식이 되어 스며 나왔다. 채호가 여기서 느낀 실망감은 며칠 전 인어공주 캐스팅 뉴스를 본 순간의 실망감만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고래처럼, 바다 바닥에 침몰한 해적선처럼 거대했다. 채호는 오늘의 아쿠아리움이 어째서 평소처럼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았는지 뒤늦게 알아차렸다. 상어와 고래가 보이지 않았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을 거라. 이제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나니 수조는 더욱 초라하고 텅 빈 것처럼 보였다. 긴급하게 내려진 결정이었을까? 인어공주 쇼를 오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굳이 아쿠아리움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실망감이 쓸고 지나간 채호의 머릿속에서 약간의 분노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야 갑자기 공연이 재개되거나 인어 역을 할 수중 무용수를 데려올 노릇도 아니었고, 채호는 평소에 비하면 사실상 텅 빈 수준의 수조 앞에서 물고기 떼를 바라보다가 아쿠아리움의 나머지를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채호는 자신이 처음 도착한 자리에서 움직여 수조의 가장자리를 향해 갔다. 거대한 직사각형의 수조 아래쪽에서 채호의 그림자가 작게 움직였다.
채호는 수조 앞을 가로질러 반대쪽으로 갔다. 유리에 직접 손이나 얼굴을 댈 수는 없었지만 그는 최대한 가까이 유리에 다가갔다. 수조의 차가움이 접촉 없이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채호는 고개를 들어 앞과 위로 펼쳐진 거대한 유리와 넓고 광활한 수조 안쪽을 바라보았다. 물은 푸르면서도 맑았다.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정화기가 돌아가면서 만들어낸 물결과 작은 파도가 내부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흔들리면서 춤을 췄다. 가까이 다가서자 수조 안쪽 생물과 물건들을 자세하고 생생하게 볼 수 있었으며, 그것들의 색깔 역시 더욱 알록달록하고 환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채호의 마음속에 제대로 들어오거나 그의 기분을 전환시켜 주지 않았다. 채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으며, 실망감이 쓸고 지나간 이후, 이미 상황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채호는 그것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 채호는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벌써 두 번이나 겪었다. 채호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함께 채워지지 않은 갈망이 있었다. 그것은 우물 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물 같았다. 채호는 마치 모래 속으로 푹 꺼지며 내려앉듯이 자신의 생각 속으로 계속해서 잠겨 들어갔다. 분노와 실망의 이면에는 채호가 원하는 것이 계속해서 존재했다. 빨간 머리, 하얀 피부, 조개 상의..... 주변의 소리와 분위기는 점점 멀어져 갔으며, 채호만의 세계가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 곧 그의 주변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게 되었다. 채호는 그 공허의 공간을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초점 없는 시선을 앞쪽에 집중했다. 수조의 물속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그의 시야에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수조 안쪽 바위 너머에서 인어 한 명이 헤엄쳐 왔다. 채호는 자신의 상상이 언뜻 튀어나온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수조 안을 헤엄치는 인어는 그가 원하고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물속에 있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빨간 머리,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조개껍데기로 만든 상의, 그리고 초록색의 빛나는 꼬리와 아름다운 꼬리까지. 채호는 잠시 동안 그 인어를 바라보았다. 인어는 주위를 헤엄치는 물고기들에게 말을 거는 듯한 행동을 했으며, 무언가를 알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기까지 했다. 채호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알아챘다.
순간 채호는 번개가 내리듯 번쩍 정신을 차렸다. 생각에 잠기면서 그의 주위를 메우던 공허는 빠르게 사라지고 아쿠아리움의 내부와 아틀란티스 수조 앞으로 그는 돌아왔다. 아쿠아리움 내부의 온도와 희미한 습기까지 다시 그의 피부와 감각 앞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수조 안쪽의 인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물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당황함에 빠진 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덧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수조 앞은 텅 비어 있었다. 채호는 조금씩 가팔라지는 숨을 계속 쉬면서, 자신이 지금 꿈을 꾸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과 그가 놓인 장소의 모습은 가장 신비롭고 오묘한 꿈에서 나올 법한 것들이었다. 채호는 송곳처럼 날카로워진 감각과 정신을 느끼면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수조 안쪽에는 여전히 인어가 헤엄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채호는 인어의 표정에 나타난 당황함이나 불쾌감, 혹은 짜증과 비스무리한 감정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채호의 마음에는 이제는 공포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그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채호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바로 몸을 돌려 반대쪽 벽을 향해 달려갔다. 이 모든 일들은 빠르게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신경 뿐 아니라 몸을 수조에서 최대한 멀리하려고 했다. 곧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반대쪽 벽에 다다르게 되었다. 잠시 동안 숨을 고르면서 그는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이번에는 눈을 꽉 감은 채,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하고 본 것들을 새하얗게 잊는 과정을 상상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면서 숫자를 하나씩 셌다. 하나.. 둘.. 셋... 몇 번씩 숫자를 셌는지 감각을 잃은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채호는 다시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닫힌 눈 안으로 스며드는 오묘한 푸른빛을 느끼면서, 다시 시선을 수조 쪽으로 향한 채 눈을 떴다.
그가 본 인어는 사라지고 없었다. 수조 안에는 여전히 같은 아틀란티스 구조물이 있었으며, 계속해서 본 것 같은 물고기 떼가 헤엄치고 있었다. 수조가 만들어 내는 물결과 물거품 역시 그대로였다. 수조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인어는 온데간데 없었으며 흔적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채호는 수조로 천천히 다시 다가가면서 이 모든 것을 확인했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땀으로 젖어 있었다. 채호는 자신이 서 있던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간 다음 수조의 양옆을 오가면서 안을 살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옆으로 반대쪽으로 그리고 앞뒤로 오가면서 그는 계속해서 수조 안으로 시선을 쏘아댔다. 인어는 없었다. 수상하거나 특이한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자신의 두 눈으로 이것들을 확인하면서 채호는 자신이 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감각과 마음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멀쩡했다. 꿈을 꾸고 깨어난 것도 아니었고, 마약으로 인해 환각을 본 것도 아니었다. 채호는 그러다가 천천히 뒤로 물러나더니 자리에 가만히 섰다.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순간 채호는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퍼진 소리에 소스라치듯이 놀랐다. 몸이 발작을 하는 것처럼 강하게 움찔거렸으며, 그는 소리가 난 쪽을 뒤돌아봤다.
"아쿠아리움 퇴장 시간입니다! 이제 그만 움직이세요!"
그의 뒤에는 경비원이 손에 입을 모은 채 소리지르고 있었다. 채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일곱 시 십 분 전이었다. 이제 아쿠아리움의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채호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혹시 자신을 포함한 다른 관람객들에게 경비원이 말을 하는 것인가 생각했지만 수조 근처에는 채호 혼자뿐이었다. 채호는 말문이 막힌 채 출구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바깥으로 이어지는 창문이 없어 외부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는 아쿠아리움이었지만 마치 여름 초저녁의 까만 하늘과 달빛이 스며 들어오듯 물은 몽환적이면서 짙은 푸른 빛을 계속해서 띄고 있었다. 수조 속의 물은 계속해서 찰랑거렸으며, 얼마 후 모든 전등이 꺼지자 수조는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