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서점, 그리고 화장실,
시대의 흐름일까요? 아니면 코로나19의 여파일까요? 저희도 무인서점으로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셀프계산대를 들이던 날이 기억나네요. 손님들도 저희도 당황하기는 매 한가지였죠.
셀프계산대를 들여놓고 가장 좋아진 점이라면요. 손님들과 계산하느라 형식적인 대화를 하지 않고 도서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거에요. 저도 책 읽을 시간이 늘었죠.
1인 자영업자로 사는 삶에서 가장 힘든 병원가기, 관공서 가기 이런 일들도 해결이 좀 쉬워졌어요. 특히나 6개월마다 다시 떼야하는 인감증명서는 꼭 주민센터에 가야 발급 받을 수 있거든요. 도서관이나 학교등 관공서와 계약을 체결할때 꼭 들어가는 서류가 바로 인감증명서에요. 나라장터(조달청 입찰 사이트), S2B(학교장터) 등을 이용할 때도 첨부해야 될 때가 많습니다.
유구서점은 바로 읍사무소 옆이라 뛰어가면 1분 걸리더라구요. 시골서점인 유구서점에 있는 가장 큰 편의시설입니다. 시골이다 보니 상가 월세가 워낙에 저렴해서 신기하다 했습니다만 유독 지금 자리가 저렴했던 이유가 있더라구요.
화장실이 없어요. 세상에나.
이 사실을 알고 옆지기 머리카락 다 뜯어 놓을 뻔 했습니다. 화장실 없는 사무실. 상상해 보신적 있으실까요? 저 그런 곳에서 일합니다. 그럼 해결책은? 위에서 예상하셨겠지만 바로 읍사무소 화장실입니다. 읍사무소 문 닫으면요. 길건너 전통시장 공중화장실을 이용해야해요. 그래서 서점 문을 아주 일찍 닫기로 했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배설욕구를 해결 못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먼저 카페 운영때도 그래서 힘드셨다는 전 세입자의 말을 계약하고야 들었다는 게 제가 지나온 함정입니다. 이래서 세 얻을때는 여러사람하고 같이 보러가야해요. 그래도 이곳 저곳 공중화장실이 많은 관광지 아닌 관광지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지나오는 길에 유구 전통시장이 있어 군것질 거리도 쉽게 사고, 장도 쉽게 봅니다. 장날이면 시장 골목에 꽉 들어찬 상인과 이용객들이 흥정하는 장면도 볼 수 있어 정겹죠. 할머니들이 산에서 캐어오신 쑥과 냉이들, 그리고 여러 채소씨앗, 그리고 묘목도 있어요. 약간 비릿한 냄새가 나서 보면 해산물도 있구요.
아. 그리고 제가 엄청 좋아하는 풀빵도 있네요. 10개에 3000원이라 가끔 사먹어요. 야들야들 얇은 밀가루 반죽안에 뜨끈하게 꽉 들어차 있는 팥앙금. 요즘 파는 곳이 없어서 많이 아쉬웠는데 이곳에는 장날마다 있습니다.
장날이면 서점도 찾는 분이 많으시냐구요?
하하. 아뇨.
곧잘 들리던 학생들도 모두 장에 가는지 한산합니다. 용돈털어 군것질하러 가는 거 같아요. 지나가는 통학로가 바뀌는 날이니 저도 여유있게 출근하고 퇴근합니다.
시골서점의 공식적인 휴무일은 일요일인데요. 불규칙한 휴무일도 있습니다. 사전 공지도 없는 휴무지요. 바로! 비가 오는 날입니다. 비가 오면, 우산쓰고 화장실 다니기도 어렵거니와 걸어서 출퇴근이 힘들어 그냥 쉬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맘대로 해되 되냐구요?
글쎄요.
찾아주는 고객들이 늘어나면 안 그럴지도 모르죠. 1인 자영업자가 고객과의 시간약속을 안지키면 어쩌냐고 저 혼내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화장실 없는 상가에서 책방을 하려면 진짜 진짜 어쩔 수 없습니다.
비 오는 날 한밤중에 공중화장실 가보셨어요? 저는 절대로 사양하렵니다. 결국 이렇게 막나가는 시골책방 책방지기가 되겠노라 선언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약 손님 생각에 가끔은 꾸역꾸역나오기도 하니 이것도 책방지기 천성입니다. 에혀.
이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장날입니다. 이제 저는 풀빵사러 다녀올랍니다. 서점 문이요? 당연히 그냥 열고 갑니다. 이 좁은 동네에 책 훔쳐가는 사람은 없거든요. 운이 좋으면 저를 기다리며 책 한권사려다 더 집어 두권 사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얼른 뛰어나가야겠습니다.
뜨끈뜨끈 풀빵이 저를 기다리니까요. 같이 드시고 싶으시다구요? 유구장날 맞춰 유구서점으로 오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