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여름은 하루가 끝나도 꼭 아직 날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밤을 밝힌다. 그날도 8시가 다된 어스푸름한 여름밤이었다. 내 과외학생 집은 별내인데, 이 곳은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위치한 신도시이다. 나는 석계역에서 항상 1155번 버스를 이용한다. 이 버스는 경기도와 서울을 넘나들며 운행되는 순환버스인데 지난번 우연히 정거장 표를 본적이 있다. 꽤 먼 경기도권까지 운행하는 것을 보고 서울 시내 버스의 왠지모를 인정을 느낀바 있다.
그곳에선 동남아계 외국인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이 날도 큰 눈과 짙은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 모녀가 버스 대각선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실 그들을 흘낏 보고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종오 시인의 <동승> 시를 교과서에서 읽은 뒤로 타인이라 여기는 이들에게 짧은 머무름이 있는 시선을 회피했다. 이제는 그런 시선을 거두겠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을만큼 습관화 됐다. 그들이 내 눈길을 끌기 전까지 나는 그들에게 눈꼽만치의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덜컹대는 순환버스가 막 화랑대역에 다다를 때 쯤 미숙하게 내리는 그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여성은 10살 남짓한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아이는 교통카드를 대려고 했지만 짐이 많아서인지 쉬워 보이지 않았다. 손에 들려있는 거추장스러운 짐을 정리하고 교통카드를 접촉했을때도 하차를 알리는, 특히 청소년임을 드러내듯 경쾌한 두번의 음향은 들리지 않았다. 모녀는 당황한듯 보였다. 더이상 아무도 내리지 않는 정거장에서의 찰나의 순간은 타인인 그들에게 긴 공백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서울 시내 버스 기사의 수없는 무정함을 목격했던 나는 같이 초조했다. 저들에게 또 어떠한 부끄러움을 줄까, 동남아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더 언성을 높이진 않을까.
내 걱정이 무색하게 버스기사는 지긋이 그들을 기다렸다. 아무말 없이 백미러로 그들을 지켜보며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공백을 말없이 받아냈다. 다행히 그들은 안전하게 하차했고 아무일 없다는 듯 버스는 다시 덜컹대며 출발했다.
출발한 뒤 백미러에 비춰지는 그의 눈이 옅게 웃고 있었다. 마스크로 입이 가려진 그의 미소를 한순간 착각한건지도 모른다. 그 짧은 기다림의 순간을 이해해준 고마움에 그를 좋게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분명히 마스크 속에 가려진 그의 다정한 미소를 봤다.
자로 잰듯이 버스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내리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눈총과 망신살을 받는 사회. 그런 사회에의 무정함이 무던한 일상으로 여겨질때쯤 오랜만에 다정함을 봤다. 마스크 속에 그가 웃고있었을지 아님 굳게 입술을 닫고 있었을지 알 수 없지만 난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