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존재에 대한 사랑

by 지하 십이층

" 너 쪼끄맣다고 까불어~ "


별내 카페거리에서 남은 커피를 홀짝 거리고 있을 때였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던 내 귓가에 조용하지만 분명한 남성의 음성이 들렸다.


흘끗 돌아보니 포메라니아 종의 강아지다. 서늘해진 바람에 스산함을 느꼈는지 털달린 작은 생명체가 안아달라는 시늉을 했다.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수십만개의 잔상 중 하나로 스쳐지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로 머릿속을 휘감았다.


왜 하필 '조그맣다고' 였을까?

'조그마한데도' 혹은 '조그마한게' 라는 다른 어미와 붙이면 더 익숙한데, '조그맣다고'라는 어미는 생경하게 들렸다.


조그마한데도 혹은 조그마한게 라는 말과 이어 붙이면,

'너 조그마한게 까불어' 라는 흔히 어디선가 들을 수 있는, 자기보다 작은 상대를 무시하는 발언이 된다.


하지만 '조그맣다고 까불어' 라는 말은 '상대가 자기보다 작은 존재고 해칠 수 없으니 어린냥을 받아줄 수 밖에 없다' 쯤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강아지 주인의 입장에 좀 더 이입한다면, '너가 작다고 내가 혼낼 수 없으니 그걸 알고 까부는 구나' 쯤으로 이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한국어의 묘미다.

어미 하나로 이렇게 속뜻이 달라질 수 있다니.

또 어떤 말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그릇을 보여준다는 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위에 말로 그 사람의 성품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키우는 반려견에게는 다정한 사람일 것이다.


조그마한 존재에 대해 무시가 아닌 보호가 담긴 무의식이 나를 의식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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