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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낯선맛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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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 Oct 06. 2023

곤란한 맛남

따뜻한 레몬수와 단호박스프

이럴 땐 여전히 곤란하다.  다이어트에 거의 최악이다.  jj는 어머님의 반찬을 거절하지 못한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한. 다.  

내 눈치가 보이는지 양평어머님댁에서 집으로 돌아올 땐 꼭 미리 전화를 한다.

"지금 출발하는데, 엄마가 모 싸주어ㅅ거...ㄷ ㅡㅇ...?"

물어보는데 보고하는 거다.  

한 동안은 스트레스를 조금 받았었다.  내가 어머님 아들 굶길까바 그러신가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혀 짧은 소리로 얘기해 주는 jj가 사랑스러울 뿐이다.  모든 것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나의 습관을 바꾸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냥 음식을 하셨고 먹을 사람이 필요한 거지 생각하니 삶이 심플해졌다. 저 사람들은 나한테 왜 이럴까 하며 온통 세상이 나를 괴롭히는 듯한 망상도 10kg가 빠지면서 같이 빠져나갔다.  


나는 하남엄마의 반찬은 일절 받지 않는다.  대신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처음에는 좀 섭섭해하신 듯했는데 지금은 서로 편하다.  최근에 오히려 내가 반찬을 해다 드리고 있다.  그러나 양평어머님의 상황은 다르다.  jj의 관할이다. 엄마가 주는데 어떻게 안 받냐 는 jj의 생각은 영원할 것만 같다.  나는 평화를 위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양손에 형형색색 혹부리 주머니 같은 비닐봉지들을 두세 개씩 나눠 들었고 손목과 팔꿈치 사이의 두 팔을 조여 무쇠냄비를 받쳐 들고 들어왔다. 위태위태하다.

봉지 탈출한 양평반찬-10.5일 저녁의 곤란한 맛남
식용유와 설탕범벅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곤란한 맛남



부모님들에 대한 감사함과 내 식단-우리의 식단은 별개이다.  다른 문제이다.  밖에서 들어온 음식들은  나의 냉장고에 장기입주하여 쓰레기가 될 때까지 자리를 꽉 채우고 전기세는 내가 낸다.  열 때마다 한식뷔페집에 서 나는 음식냄새가 진동하고 나의 음식을 만들지 못하게 되니 무기력해진다.  어머님들이 해 주시는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의 식단은 내 역할이고 난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방해받고 싶지 않다.


한동안은 정말 요긴하게 받아먹었다.  우리 둘 다 퇴근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희끗한 페인트와 먼지가 묻어 있었고 치킨을 시킬까, 족발을 시킬까 가 저녁시간의 첫 번째 의사결정 사항이었다.  그런 생활이 2011년부터 작년까지 이어졌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님들의 감자탕, 백숙, 닭볶음탕 등과 식당맛 반찬들은 한 끼 식사비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감사한 선물이었다.  그렇게  나는 57-->72kg, 그는 77-->89kg가 되었었다.  그 힘든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만족할 수 있는 체중조절과 건강식단 - 나에게 맞는 식단은  '낯설어야 한다'이다.

낯섦, 낯선 맛, 엄마 맛, 식당 맛이 아닌것이 도움이 되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식당 맛을 연구한다.jj를 위하여)


2-30대에는 운동량이 어마어마한 프로치어리더였고 그 이후에도 활동량이 컸기에 엄마맛, 식당맛 음식들은 나의 체중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체중뿐이다.  이제는 깨달았지만 정신과 마음상태에는 아주 큰 영향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음식을 해 주시고 밥을 사주는 가족들과 지인들에 대한 감사함은 진심이다.  그러나 내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을 때 나는 진짜 어른(또는 신)이 된 듯한 기분을 경험했다.  거절할 수 없어서, 귀찮으니까, 식비 아끼려고 계속 부모님의 음식을 받아먹었던(나눠먹는것과는 다른개념) 시간들은 이제 소중한 추억이다.  감량동안 정 이라는 감정은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  감성타령은 다이어트와 정신건강에 대부분 도움 되지 않았다.  감성에 젖어 몸과 마음이 가라앉고 있을 때 나는 다이어트의 메커니즘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지속하는 게 어려웠지만 냉장고문짝에 프린트해서 붙였다.

아직도 도움 되는 문구 - 기적은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오전 일찍 무료차량검사 대행을 위해 렌터카 직원분이 오셨다. 카를 보냈는데 왜 애들 학교 보낸 기분인지.(자식 없음)  

화장실에 다녀온 후, 체중을 재고 따뜻한 레몬수 두 잔을 제조했다.  얼마 전까지 레몬을 짜서 마시다가 최근 괜찮은 유기농 레몬주스가 있어서 따뜻한 물에 한 숟가락 정도 타서 마신다.(밥숟가락)  

레몬수를 마실 때 매번 우스꽝스러운 오징어표정을 짓는 jj덕에(아들아님) 항상 웃으며 아침을 시작한다.


오늘도 jj는 양평어머니 집 고치러 출발했다.  지인들한테는 돈도 제대로 안 받고 칠해주러 다니며 엄마집 페인트공사는 돈 주고 다른 작업자를 부르신다길래 이건 아니지 않나 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3일째 칠하고 장판 깔고 힘들다 한다.   그래도 나와 함께 자동으로 감량되고 있는 jj는 요즘 확실히 코를 덜 곤다.


아침간식으로 우리는 어젯밤에 쪄놓은 단호박과 고구마 그리고 견과류, 소금, 올리브오일, 물, 우유 조금(제외 가능)을 믹서기에 간 후, 냄비에 잠깐 데워 따뜻하게 먹었다.  당근이 있을 땐 색이 더 이뻐지고 더 달다.  어제 도착한 사과, 가성비 좋은 유기농 못난이 사과 한 개를 반개씩 나눠 먹었다.  옆에서 보면 사과모양인데 위에서 보면 별모양이 나는 아주 달콤한 사과다.  나는 호박의 껍질까지 같이 갈아먹는다.  색깔은 똥색이 되지만 특유의 깊은 향이 너무 좋다. (jj는 설사x색이라고...)

소금은 생각보다 조금 더 많이 넣어주면 호박의 단맛이 확 뽑아진다.  설탕은 필요 없다.  문숙 님의 레시피를 활용해서 내 입맛과 jj입맛에 맞췄다.  내 식단을 강요한 적은 없다.  감량 초기에는 매 끼마다 두 가지 스타일의 식사를 준비했었다.  그러다 내 음식을 한 번 먹더니 괜찮다며 자기도 똑같이 먹겠다고 합의했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진다.  특히 아이음식은 성인이 되기 전엔 엄마에게 주도권이 있다.  자신이 안 먹는 음식은 아이도 안 먹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아이도 좋아하게 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의 주도권을 기쁘게 행사한다.  배불리 먹었는데 5kg 빠졌어 라며 동네방네 이야기하고 다니는 jj덕(아들 아님)에 나는 더 열심히 식단을 만든다.  나는 칭찬에 춤춘다.



* 올리브오일이나 아보카도오일을 꼭 조금 넣어주세요.  오메가-3는 다이어트에 도움됩니다.  후추도 기호에 따라 뿌려드시면 이색적인 맛이 나요~ 견과류는 없으면 제외하고 무엇이든 나에게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해보세요.  단호박과 소금, 물만 넣어도 가볍고 달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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