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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 Aug 02. 2022

여자가 이런 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1

이런 일 하는 여자의 답변 #1

'여자가 이런 일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남자가 묻는다.


'이런 일'이란 페인트칠을 말하는 것일 거고,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건 이 바닥에 어떻게 진입해서 너처럼 돈을 벌 수 있느냐 일거다.


정말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다.

그 질문자는 10년 이상 페인트칠하고 있는 현역인데 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할까


'그쪽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여기에 대한 대답은 정말 여러 가지다.


아버지 따라서, 어머니 따라서, 형들, 동생들 따라서 시작한 사람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에만 아르바이트하다가 현재 회사를 그만두고 온전히 칠쟁이가 되고 있는 사람

미대 나와서 벽 칠하는 사람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하다가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이 서 함께 일했던 페인트 사장님 몇 개월 따라다니다가 프리랜서 하는 사람

페인트 회사에서 일하다가 나와 페인트칠하는 사람

판매 대리점이나 영업사원 하다가 나온 사람

사업하다가 빚져서 건축 건설현장 막일하다가 페인트가 젤 만만해서 갈아탄 사람

목공, 건축하다가 회사 운영을 싫고 혼자 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 시작한 사람

엄마가 셀프 페인팅에 미쳐서 아들까지 끌어들여 시작한 사람 등등등

이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었고,


여자분들의 대답은 주로

남편이 해서 돕다가, 셀프 페인팅해보다가, 디자인이나 미술 쪽 관여하다가 정도..


나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전 직장 동료 진희(아주 잠깐)와 친해지게 되면서 서로 연락하고 안부 묻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홍대대학원을 졸업한 화가이지만 최소생계비를 벌 수 있는 알바가 필요했었고 사이트에서 벽화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그녀의 구직 과정을 실시간 전화통화로 재밌게 듣고 있었다. 


'언니 여기 신기해 ㅎ 페인트가 냄새가 하나도 안 나고 색도 진짜 많아!  그리고 페인트칠하는 사람이 다 젊어!'

젊다는 건 그때 당시 우리 나이 또래... 약 30대 초중반 일거다.

'월급은 얼마래?'

'배워야 해서 일단 교육받는 동안  80만 원이고 현장 나갈 정도 되면 일당으로 정산한다는데 하루 15만 원부터 시작한대'

그때가 2010년이었던 거 같다.

프로 치어리더 10년 이상 해도 게임당 여전히 12~15만 원 받던 거에 비하면 나쁘지 않았다.  


내 명석한 두뇌는 곧바로 계산에 들어갔다.


15만 원 x 20일만 해도 300은 벌겠네ㅎㅎ


그렇다. 그때 나는 한 달에 300만 벌면 할 게 많았다.

집도 구하고, 책도 사보고, 밀린 핸드폰 요금도 내고 나머지 10일은 쉬면서 독서와 글쓰기, 미술관 영화관에 놀러 가는 그런 삶이 눈앞에 그려졌다.

나는 솔깃했고 '진희야 너 매일매일 전화해! 낼 현장 간다고? 현장 가서 꼭 전화조! 넘 궁금해~' 

진짜 궁금했다.

결국 현장에 있을 것 같은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응, 언니~! 왜 ㅋㅋ?'

'어 어때? 재밌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때?'

'응 응 모.. 아직 잘 모르지... 지금 개포동 쪽에 있어'

'나 가보면 안 돼? 음료수 들고 구경 가면 안 될까?'

'응... 글쎄... 함 물어보고 연락 주게 끊어봐'


전화를 끊자마자 답이 오기도 전에 나는 오랜만에 머리를 감았다.

지갑에 음료수 사갈 현금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언니 여기 주소 보낼게. 5시쯤 끝나니까 그 전에는 와야 해'

'어 지금 가'

faux suede텍스쳐 페인팅 - 데코, 아트, 스페셜, 포 페인팅이라고도 불린다 [ 시공:아트704 사진:선율 ]


23살에 처음 프로야구 치어리더를 시작하게 되었다.

33살까지 그 바닥에서 이런저런 삶을 살았고, 3~4년 폭풍 같은 일들을 겪으며 지인의 자취방에 완전히 찌그러져 엎드려 있던 2010년 가을-지난 삶이 몇 줄 안되네


개포동에 한 오래된 아파트였던 거 같다.  강남 아파트가 이렇게 후졌는지 처음 알게 된 날이기도 하다.

내부 인테리어 공정 중 페인트 공정이 있는 날이었나 보다

조용했고 내가 상상한 시끄러운 공사 소음은 없었다.


'아.... 안녕 하.. 셔.. 요... 지...ㄴ 희야~~~?


현관문은 열려있었고 그 안은 공연 무대 뒤편처럼 각종 자재들과 준비물들이 쌓여있었다.


'언니!'

'오~~~ 안뇽~'

'인사해 우리 팀장님이셔 '

'안녕하세요~!'

'네'


한창 일하는 중인 듯했다.

나는 조심조심 살금살금 이방 저 방을 드나들며 구경했다.

근데 사실 몰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도배나 페인트를 바르기 전에 맨 벽을 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석고보드도 처음 보고 엠디에프로 조각조각 벽을 만들어놓은 미완성 작품들 모두 처음이라... 솔직히 여긴 어디, 이건 모지 하는 밋밋한 당혹감이랄까...

생각했던 광경과는 너무도 달랐고, 바닥은 나무가루와 하얀 가루 회색 가루들이 콜라보를 이룬 먼지투성이에 담배연기가 가득했고 좁고 답답했다.  여기저기 비닐로 창문들을 다 감싸 놓아서 바람도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샌딩(연마, 갈아내기) 작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급히 그곳을 도망 나왔다.  


'진희야... 수고해~ 나 먼저 갈게~'

'응 언니 전화할게'

'수고하세요 팀장님!'

'네'


깜짝 놀랐다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양호한 현장이었지만...

별다른 매력도, 매력적인 사람도 없었다.

오랜만에 머리 감고 나온 외출인데... 정말 무기력하게 다시 지하철을 탔다.


15만 원 x 20일만 일해도 300만 원......ㅠ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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