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약속이 있는 전날부터 찾아오는 불안과 짜증.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지만 모래 한 알 때문에 불편한 운동화 속 발바닥처럼 계속 신경쓰게 된다.
모든 약속이 다 그렇진 않다.
그런 약속과 안 그런 약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떤 약속은 숙취가 심한 아침같기도 하고, 어떤 약속은 3일간 긴 잠을 자고 일어난듯 가볍고 심지어는 어디론가 빨리 튀어나가고 싶을 정도로 장전돼 있다.
어떤 약속은 두통전야이고, 어떤 약속은 두통이 사라진 뒤다.
어떤 약속은 일어나자마자 다시 자고 싶게 하고, 어떤 약속은 곧장 샤워를 하게 한다.
나의 무의식과 에고,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약속
에고를 내려 놓아야 지킬 수 있는 약속
약속한 나를 후회하는 약속
신나지 않는 약속... 등이 주로 신발 속 작은 모래다.
오늘 13시의 약속이 그러하다.
새벽명상때부터 온갖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니, 어제 밤 잠자리에서부터다.
나의 내면은 비상이다. 시끄럽다.
'못간다고 하자' '까먹었다고 할까?' '너 안가도 전혀 문제 없어' '1시간 미팅하러 거기까지 가는 게 맞아?' '허리도 아프잖아' '너에게 꼭 필요한 모임도 아니잖아' ... '그러게 왜 약속했어?' 라는 후회로 골인한다. 후회는 일종의 자기비관이다. 평소에 자기비하나 비판 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알아차림의 깊이로 수색하다보면 여지없이 숨어 있다. 너무 꽁꽁 숨어 있어서 나도 모를 때가 많다.
명상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미세한 불편함의 실체를 찾아가는 연습을 즐기게 되었다. 나타났다 머물고 흩어지는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깊은 호흡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해서 습관화하다보면 일상생활속에서 문득 그 실체를, 나를 알아차림하게 된다. 나의 경우에는 주로 몸 컨디션에 의해 좌우된다.
때론 진실이 알아지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 무지한 채 대상탓, 환경탓, 부모탓, 세상탓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려 해도 그럴 수 없다.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주 큰 눈으로...
그러나 오늘처럼 자아를 내려놓기가 어려운 약속이 있을 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나와의 어떤 '거래'가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내가 나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나를 신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가 가볍게 집을 나갈 수 있을까...
하기 싫어지면 곧장 바로 멈춤하는 것도 수행이라고 한다. 한 두번 해본 적이 있다. 너무 좋았지만 타인이나 관계에 상관없는 일에서는 부담 없이 도전해 볼 순 있어도 그 외의 것들에서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오늘,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