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

by 부키비키

책을 좋아했던 건 기억이 또렷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이다.

초등학교 때는 방과 후에 작은 동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곤 했다.

도서관 특유의 종이 냄새, 오래된 책장에서 나는 나무 냄새, 그리고 조용한 공기 속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 그 안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책을 쓰는 사람은 멋있다’는 생각이 있었다.

책 속에 담긴 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몰랐지만, 이름이 표지에 적힌 작가를 보면 부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움직이고, 웃기고, 울리고, 위로하는 경험을 선물한다는 건 너무 대단한 일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이야기나, 대중이 감탄할 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하루 대부분은 일과 집을 오가는 데 쓰였다.

글을 쓴다고 해봐야 SNS에 짧게 적는 여행 후기나 책 감상문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사소한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 메모장을 켰다.

회사에서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와 오늘 느낀 감정을 짧게 써 내려갔다. 별것 아닌 글이었는데, 며칠 뒤 친구가 내 SNS에서 그 글을 보고 댓글을 남겼다.
“이거, 너만 쓸 수 있는 글 같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내가 가진 경험과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수 있다는 뜻일까?

그때부터 메모장이 조금씩 달라졌다. 감정이 동한 순간, 재미있는 장면을 본 순간, 혼자 생각이 깊어진 순간들을 짧게 기록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메모장 안에는 나만의 글들이 쌓여갔다.

그것들은 거창하지도, 세상을 바꿀 만한 위대함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의 색이 묻어 있었다.


한 번은 회사 동료가 내 글을 읽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거 책으로 내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 안 해봤어?”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다. ‘책을 낸다’는 말은 여전히 나와는 먼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으니까.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편집자를 만나고, 원고를 완성하는 과정은 너무 복잡하고 전문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부쩍 ‘책’이라는 단어에 민감해졌다. 서점에 가면 책 표지와 제목을 더 유심히 보게 됐고, 어떤 사람이 이런 책을 썼을까 상상하게 됐다. SNS나 블로그에서 개인이 책을 출간한 사례를 찾아 읽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라는 꿈을 일상 속에서 실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 ‘POD 출판’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한 권씩 인쇄하는 방식이라니, 출판사와 계약하지 않아도 책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불씨가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컸다.
“아무도 안 사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쓴 글이 너무 유치하거나 얕아 보이면?”
“책을 낸다고 하면 주위에서 비웃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책을 내는 건 완벽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글이라도 세상에 내놓을 용기를 낸 사람의 몫이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내가 책을 못 내는 이유가 ‘실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은 ‘두려움’이 더 컸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잠시 웃거나, 공감하거나,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어쩌면 한 명의 독자만 있어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내 글쓰기는 달라졌다. ‘언젠가 책으로 묶일 글’이라는 생각을 하며 쓰기 시작했다. 문장을 조금 더 다듬고, 에피소드를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나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책을 낸다는 건, 생각보다 더 개인적인 여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일.


아직 그 여정의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있을 뿐이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이제 나는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쓰는 사람’의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