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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운 이름 「우리 아버지」

Ep.2 참 낭만적인 사과

by 마담D공필재

8남매나 되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까지 시키려다 보니 우리 아부지는 농사 외에 부업을 많이 해야만 했던 것 같다.

소와 돼지 같은 가축 기르기는 물론이고 제법 규모가 크게 양계장도 했으며 양봉은 내가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아부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했던 부업이다.

그 해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부지는 평생 해보지 않았던 이동 양봉을 시작했다. 친구 분과 둘이서 강원도로 가신 것이다.


어느 새벽에 강원도에서 아부지한테 전화가 왔다.


-아부지가 생각을 해 보니까 니한테 사과해야할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그렇게 운을 뗀 아부지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기절한 일에 대해 되짚으며 사과를 하셨다.


오빠와 큰언니 둘째언니는 도시로 나가 공부 중이었고 내 바로 손위 언니와 나 그리고 내 바로 손아래 동생 셋은 고만고만해서 언니는 중학생이었고 동생은 4학년이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한잠 주무시고 일하러 나가시면서 아부지가


-느그들은 추우니까 나오지말고 공부해라잉. 공부하기 싫은 놈 있냐? 그럼 나와서 아부지 일 도와라


고 하셨다. 나는 그때 막 질풍노도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그 말이 좀 치사하게 들렸다. 그래서 아부지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때 아부지는 산에서 잔디를 파다가 어딘가에 뙤장(뗏장)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허 이놈 봐라. 니 공부하기 싫으냐?


아부지가 말씀하시자 나는 당차게 '예'라고 대답했다.


-그럼 집에가서 뙤장 이고 갈 세수대야 갖고 온나


그래서 나는 또 투덜거리며 세수대야를 가져왔다. 아부지가 삽으로 크게 뙤를 퍼서는 대야에 담아 내 머리에 얹었다. 나는 눈을 내리깐 채 이를 앙다물고 두 손으로 대야를 야무지게 붙들고는 휙 돌아섰다.


그리고 암전----내가 눈을 떠 보니 마루에 앉은 아버지의 무릎에 엎어져 있고 아부지는 유한 양행 안티프라민으로 내 허리와 등과 어깨를 치고 있었다.


-그때 아부지가 어린 니한테 그러는 게 아니었는디 미안하다. 나는 니가 그만 아부지 잘못했어요 할지 알았제 그걸 이고 가다가 엎어져서 기절할 줄 몰랐다. 잘못했으믄 허리병신 될 뻔했어야. 생각해봉께 그것이 다 자식을 이겨묵어 볼라는 내 고집이었더라. 용서해라잉


그 전화가 마지막이었다. 4일 후 새벽에 아부지는 강원도의 야산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돌아왔을 때는 더이상 이전의 우리 아부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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