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몰랐어요 아부지
어느 마을에나 당산나무가 있듯이 우리 동네에도 언제 심었는지 모를 팽나무 세 그루가 당산나무 역할을 했다. 지금은 수호신 역할도 위용은 사라지고 까치집 서너채를 매달고 외롭게 서 있는 고목이나 내가 어렸을 때는 매우 짱짱하고 무성했다.
특히 가운데 팽나무는 손톱 만한 까만 팽이 열렸는데 달달하니 제법 먹을만 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 바람에 팔이 부러지는 놈 다리가 부러지는 놈 때문에 가운데 팽나무는 어른들의 애가심이었다.
나무 타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실력을 가지고 있던 나 역시 우리 아부지의 애가심이었다. 툭하면 팽나무 꼭대기에 올라 앉아 나뭇가지와 함께 바람에 휘청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팽나무에 올라간 사실을 들키면 단단히 혼이 났기 때문에 나는 아부지가 길게 집을 비울 때를 이용했다. 긴 시간 집 주변에 아부지가 안 계실 때는 주로 사두실 논에 가실 때였다.
아부지가 집을 나서서 천 씨집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는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날다람쥐처럼 나무 위로 잽싸게 올라갔다.
그리고 여보란듯이 나뭇가지에 몸을 단단히 밀착시키고 두 손을 자유자재로 뻗어 팽을 따서는 목을 꺾고 나를 우러러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흩뿌리며 영웅심에 들떠 있곤 했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야아 느그 아부지 목소리다!
라는 신호가 들리면 내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부지는 어찌나 큰 소리로 '허험 어험' 헛기침을 하셨는지 모습이 개미 만큼 작게 보일 때부터 아이들은 우리 아부지가 논에서 돌아오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서둘 것 없이 여유롭고 안전하게 천천히 나무에서 내려 올 수 있었고 그 덕에 한번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애들한테 뻐기곤 했는데 어른이 된 후, 그것도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한테 전해 듣고서야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세상에 느그 아부지 같이 좋은 양반은 또 없을 것이다. 니가 혹시라도 팽나무에 올라갔다가 아부지 오는 거 보고 놀래서 내려오다 떨어질까봐 일부러 천 씨 집 쪽이 아니라 니 잘 보이라고 산질로 돌아오셨단다. 글고는 박정고개 넘어서면서부터 니 들으라고 고래고래 고함 치대끼 헛기침을 했다고 안 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