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직 그리운 이름 「우리 아버지」

Ep4. 싸나이 하는 일에 세 번 따윈 없다.

by 마담D공필재

@싸나이 하는 일에 세 번 따윈 없다.


우리아부지는 성격이 매우 급했다. 그야말로 불 같았다.

얼마나 급한지 말을 못 알아들어도 세 번은 물어 볼 수가 없었다. 세 번째 물으면 대답 대신 눈을 아부지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라리며 달려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전기톱을 치켜든 텍사스 사나이를 보듯 공포스러워서 오줌을 찔끔거릴 정도였다.

우리 논 대부분은 사두실에 있었다. 사두실은 집에서 1~2키로 정도 떨어져 있었으며 집과 논 중간 지점에서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했다.


농약을 살포하려면 모터와 분사기와 말도 못하게 긴 분무 호스와 바케스와 물과 농약을 섞어 담을 커다란 대야가 두세 개 필요했다. 아부지는 리어카에 그것들과 함께 나와 내 동생을 싣고 사두실 고개를 넘었다.

아부지는 논 사이에 있는 둠벙과 근처에 기구들과 대야와 우리를 내려놓고 농약을 섞는 방법을 알려준 뒤 숙련된 조교의 솜씨로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분사기를 들고 기다란 호스를 풀며 저만치 논으로 갔다.

아부지가 모와 모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농약을 뿌리기 시작하면 나와 동생은 바케스를 들고 둠벙에서 물을 길러 여분의 대야에 채웠다. 그리고는 학습한 대로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이 농약 한 뚜껑, 저 농약 한 뚜껑을 차례로 섞었다.

물에 농약 한 뚜껑을 떨어뜨리면 ‘촤아아악’하고 퍼지면서 물이 파랗거나 노랗거나 빨갛게 되고 작대기로 두세 가지 농약을 휘휘 섞어주면 파랑이 노랑으로 노랑이 빨강으로 바뀌는 마법!! 그야말로 파란 농약 줄까 빨간 농약 줄까? 였다. 그 색깔은 정말 한 모금 마셔보암직하게 유혹적이었다.

그렇게 둘이서 재미지게 농약을 휘젓고 낄낄거리고 있으면 갑자기 논 사이에서 아부지가 뭐라고뭐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예에에에에엣?

-뭐라고뭐라고뭐라고

-잘 안 들려요오오오오옷!

-뭐라고뭐라고뭐라고

-야, 란아! 뭐라고 하시냐?

-몰라 언니!

-아, 어쩌지? 어쩌까? 워머 큰일났네.

-몰라몰라 나도.

-에라 모르겠다. 뭐라고요오옷? 모타 소리 때문에 안 들려오옷!

그러면 게임 끝!! 세 번은 없다. 이제 전기톱 대신 빈 주먹을 불끈 쥔 텍사스 사나이가 논둑길을 내달아 돌격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공포의 담박질!!


그놈의 티끌이 문제였다. 잔디건 띠건 잡티 하나만 대야에 들어가도 분사기 끝이 막혀서 농약이 나오지 않았던 거다. 분사기 끝을 열어서 티를 털어내려면 모터가 돌아가서는 안 되는 거였다. 아부지는 모터를 끄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그놈의 모터는 나와 동생 사이에서 ‘타타타타타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가열차게 돌아가고 있었으므로 내가 동생에게 하는 말도 소리소리 질러야 겨우 알아들을 판인데 저 멀리서 질러대는 아부지 소리가 들릴 리가 있었겠는가?


성미 급한 아부지가 우리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잽싸게 산으로 뛰어 달아났다. 그런데 동생은 무슨 생각인지 매번 그냥 가만히 앉아 대야를 젓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모타 끄란 말이다 이놈들아!


소리를 지르는 아부지의 주먹에 머리통을 얻어맞고는 주먹만한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곤 했다.

어느날 밤이었다.

아부지가 내게 말했다.

-현아!! 담에는 란이를 델꼬 도망을 치등가 란이보고 도망을 치라고 말을 해라. 어째서 그 놈은 긍가 모르것다. 아부지 성질 급한 거 알믄서 왜 도망을 안 치고 앉았다가 꿀밤을 맞는지 아부지가 속이 상해 죽것다.



작가의 이전글오직 그리운 이름 「우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