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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아봐요. 사는 것 생각보다 재미있다니까

[늙은 숫염소랑 살아보기]

by 마담D공필재

무엇에 씐 건지(나훈아로 추정한다) 남편이 어느 순간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귀밑까지 내려왔을 때는 저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밤마다 야한 생각이 넘치는지 머리카락은 잘도 자라서 순식간에 어깨까지 치렁치렁해졌다.


너무도 흉해서 협박도 하고 얼러도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고무밴드 서너 개를 사 주며 말했다.

-어디 가서 내 남편이라고만 하지 마! 애들 아빠라고도 하지 마!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무슨 가족 행사가 있었던가 어쩔 수 없이 애지중지하던 머리를 자르게 되어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이제 끝이겠지 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이번에는 턱 밑에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사람이 좀 비열하게도 보이고 가벼워도 보이고 얕잡아 보기 딱 좋아 보이는 게 이방? 형방? 공방? 아무튼 조선 시대 지방 하급 관리 같았다.

어찌나 흉측한지 이번에도 협박과 공갈과 회유로 말려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건 고무줄로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라 볼 때마다 환장을 하겠는데 마침 조카 결혼식이 있어 이번에도 애지중지하던 수염을 밀어야 했다.

그리고 또 이제 끝이겠지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는 남편! 아 정말 천불 나!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

분명히 또 뭔가에 씌었다. (아무리 봐도 나훈아랑 하관이 닮았다.)

며칠 전에 함께 밥을 먹은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길래 그대로 전해 주었다.

-언니, 내가 이 나이에 늙은 숫염소를 형부로 두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뭐?라고 묻는 게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 과연 턱에 달라붙은 숫염소 영을 떼고 나타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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