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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단상

[참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오기도 한다]-25.10.08.

by 마담D공필재

[참고 버티면 좋은 날이 오기도 한다]-25.10.08.


10월이 되자 기다리던 금목서가 피었다. 공기에 금목서 향이 섞여 숨을 쉴 때마다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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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정원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세 번을 갈아엎은 후에야 현재의 '비단햇살 가든'이 완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돈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들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가장 피해를 많은 본 것은 이미 심겨 있던 화초와 나무들이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에서 구조를 바꾸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 중장비가 들어와서 대대적으로 기존 형태를 갈아엎어버리기 때문이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화초와 작은 나무들을 미리미리 파두어야 하고 너무 커서 사람 힘으로 파 낼 수 없는 것들은 장비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리고 공사가 끝나면 허허벌판을 다시 채우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화초와 나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여 죽게 된다. 아끼던 식물들이 죽게 되면 죽는 게 아니라 죽이는 꼴이 되기 때문에 식물들이 안착하지 못하면 죄책감이 든다.

은목서2.jpg 은목서-금목서가 질 때쯤 핀다

두 번에 걸쳐서 나무들을 못 살게 굴었기 때문에 재작년에 다시 공사를 하기 전에는 오래오래 구상하고 나무나 화초 심을 위치까지 미리 계획했다. 그 덕에 식재와 정돈도 빠르게 끝냈고 관리하는데 시간을 넉넉하게 줄 수 있어서 식재 후 관리 소홀로 죽이는 식물이 적었다. 문제는 금목서 한 그루!


정원은 사계절 풍경을 모두 고려하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 그래야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겨울에도 삭막하지 않으려면 상록수는 필수이다.


나는 나무의 녹음도 좋지만 기왕이면 꽃이 피는 것이 좋고 그 꽃이 향기가 있으면 더욱 좋다. 그래서 금목서와 은목서 두 그루를 가장 좋은 위치에 심었다. 한 해를 넘기고 보니 금목서 한 그루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작은 나무를 하나 더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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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파재 정원 비단햇살 가든의 금목서와 은목서

금목서와 은목서는 정원의 중심 축이기 때문에 재작년 공사에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문제는 새로 심었던 작은 금목서는 위치가 적당하지 않아 파내야 했고 우선 커다란 화분에 옮겨두었는데 식재가 모두 끝나도 도무지 애를 심을 장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 그루는 나무요 한 그루는 욕심이었다.


어쩔 수 없이 화분에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볼 때마다 고민하면서 일 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이 장한 아이가 정말 민망하게도 화분에서 꽃을 피워 그렇게 고운 향을 날리는 것이었다.


누구 잘 키울 사람에게 팔아야 하나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또 한 해가 지났다. 며칠 전 잡초를 뽑고 있는데 바람결에 살랑살랑 익숙한 향이 풍겼다. 어머나 세상에나 어느새 어느새 시월, 금목서가 핀 것이다. 혹시 싶어 화분에 있던 금목서도 역시나 오종종한 황금별을 잔뜩 매달고 있었다.


미안하고 안쓰러워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남편과 궁리를 하다가 장미 두 그루를 파서 화분으로 옮기고 온실 옆에 자리를 마련하여 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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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볼 때마다 어찌나 흐뭇한지 굳이 찾아가서 들여다보며 킁킁거린다. 급기야는 캠핑용 의자를 가져다가 나무 곁에 두고 오래 앉아서 어루만지며 향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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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무리 살기 힘들어 딱 죽겠다 싶어도 참고 버티다 보니 또 이렇게 좋은 날이 오기도 하는구나 싶은 게 꼭 내 살아온 날을 보는 듯하여 앞으로 더욱 애정을 쏟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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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적응해서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여 시월을 향기롭게 만들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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