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도 살아봐요. 사는 것 생각보다 재미있다니까.

[인어공주로 살아보기 1]-25.09.30.

by 마담D공필재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인어공주가 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것은 참지 못하면서 오줌을 그렇게 잘 참는다. 참다가, 참다가 방광이 터지기 직전에야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다리를 비비 꼬며 좀비처럼 비척비척 화장실에 간다.


낮에도 그러는데 하물며 밤이겠는가. 더구나 중간에 세 번씩이나 깨서 화장실엘 다녀온 밤에는 새벽잠이 너무도 달다. 그 달디 단 밤 양갱 같은 잠을 오줌 따위에 내줄 수는 없지 않겠나. 무엇보다 오늘 새벽에는 너무도 설레는 꿈을 꾸는 중이라서 중간에 절대 끊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우리 학교는 양 갈래 머리를 땋았는데 꿈에서는 단발한 내가 무슨 미팅인지를 하고 있었다. 내 파트너는 이가 희고 가지런하고 훤칠한 남학생이었는데(박보검이었다고 나중에 이미지를 억지로 만들어냈다) 얼굴을 마주 바라볼 수도 없을 만큼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초가집 흙담에 서 있었다.

남자애가 내게 뭐라뭐라뭐라 말을 했는데 상당히 우스운 말이었던지 나는 몸을 배배 꼬며 수줍게 쿡쿡쿡 웃었다. 그러자 그 남자애가 또 뭐라뭐라뭐라했다. 그래서 또 픽! 웃으며 오른쪽 팔꿈치로 그 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학! 하더니 푹! 웃으며 그 애가 주춤 몇 발자국 옆걸음 치더니 흰 이를 드러내고 하하하! 웃었다. 아 달콤해!


그때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이런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보았나. 어멋! 소나기! 호호홋! 두 손을 벌려 비를 받으며 빙그르르 호호홋! 돌아야 하나? 호호홋! 더할 나위 없이 명랑한 내가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흙 마당으로 발을 내딛으려 하자 그 애가 모자를 벗어서 내 머리를 가려주었다. 그리고는 제법 어른 티가 나는 굵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달콤해!


-현이 씨, 화장실 가요. 일어나요 어서요.


잠시만요,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혼 뭐예요? 다리를 오므리고 괄약근에 힘을 주며 버티다가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아, 오줌마려! 방광이 부풀 대로 부풀어서 아랫배가 볼록했다. 볼록한 아랫배는 감각이 거의 없었다. 아이잉, 짜증나아아! 꿈을 아직 떨쳐내지 못한 나는 여고생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앙탈을 부리다가 포기하고 눈을 감은 채 바닥에 다리를 내리고 일어섰다.


악! 그 순간에 오른쪽 허리가 찌릿하더니 엉치뼈를 지나 엄지발가락까지 전류가 흘렀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 뭐지? 싶었으나 금방 오줌이 나올 지경이라 무시하고 화장실로 가려는데 악! 세상에나, 허리와 엉덩이 다리가 너무 아파서 발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사태를 어쩌지? 결국 못 걷게 되고 마는 건가? 깜짝 놀라 정신이 제대로 들었지만 이러다 옷에 싸지 싶어서 장롱 문짝을 잡고 침대 머리를 잡고 문고리를 잡고 아악아악아악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질질 끌며, 맨발로 절며 절며, 화장실에 갔다.


아! 문어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주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이렇게 해변을 걸었겠구나! 어찌어찌해서 변기에 앉았다. 그러자 허리에 무게가 쏠리며 통증이 더욱 심해졌다. 아악, 아악, 아아아악! 나는 변기에 떨어지는 오줌 소리가 묻히고도 남을 정도로 크게, 크게, 크게 비명을 질러대며 길고 긴 시간 동안 기린처럼 오래오래 오줌을 누었다.


애들이 어렸을 때 동물원에서 기린을 보았다. 하필 오줌을 누기 시작하는 기린을 보았다. 철철철철...기린 방광에는 무슨 한일 자동 펌프라도 달려있는가 콸콸콸 폭포처럼 쏟아지는 오줌! 아무리 기다려도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지는 오줌!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는 그냥 다른 동물을 보러 갔다. 얼마쯤 있다가 내려오는데 옴마야, 세상에나 기린은 그때까지 오줌을 누고 있었다. 대단한 방광이었다.


아뿔싸! 문어 마녀가 인어 공주를 기린으로 만든 건가. 내 오줌도 그 기린 못지않게 끝없이 나왔다. 졸졸졸졸...아, 불쌍한 내 방광.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원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