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원 단상

[함께 늙어가는 중입니다]-25.09.25

by 마담D공필재

[내 좋은 것 네게 주고 네 좋은 것 내게 주는 아름다운 선순환]

꽃.jpg

먼 곳에서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바깥주인이 씨암탉을 잡고 안주인은 아궁이에 불을 지핍니다. 집 안팎에 구수한 고기 냄새가 진동을 하더니 안주인이 먹음직스러운 닭백숙을 도리소반에 올려 방으로 들입니다.


-차린 것은 없지만…


손님과 바깥주인이 도리소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두런두런 정담을 나눕니다.


-영천 아재께서 편찮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어험! 멀다는 핑계로…어험!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가 영 이상합니다. 무엇이 불안한지 바깥주인은 자꾸만 헛기침을 해댑니다. 아까부터 고기를 집었다 놓았다 깨작거리던 손님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들썩 좌불안석입니다.


주인과 손님의 신경을 건드리는 곳은 방문입니다. 이게 문인가 싶을 정도로 낮아서 드나들며 겸손하게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여지없이 문지방에 이마를 찧을 수밖에 없는 궁색한 여닫이문입니다. 안 그래도 누렇게 변해 금방 찢어질 것 같은 창호지에 구멍이 뚫려있고 눈알 두 개가 열심히 방안을 훑고 있습니다.


-… 이것들이, 버릇없이!


잔뜩 숨을 죽인 안주인의 호통이 들리더니 이어서 어린 아들들이 자지러지게 웁니다.


-아이고, 이놈들이!


안주인의 숨죽인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이내 집안이 조용해집니다.

옥수수.jpg

그제야 좀 드시려나 했더니 야속한 손님은 여전히 고기에는 손도 대지 않고 국물에 떠 있는 쌀 몇을 떠서 후룩거립니다.


-어르신, 어째 통 드시지를 못 하십니다? 입에 맞지 않으신지요?


화들짝 놀란 손님이 손을 휘휘 내젓습니다.


-아닐세, 아니야. 이 사람 무슨 말씀이신가? 내 먼 길 오느라 하도 허기져서 주막에 들러 막걸리에 파전으로 배를 든든히 채웠다네.


너나없이 가난한 살림에 그럴 리가 있습니까? 물을 넘기는 목울대에서 꿀렁 소리가 날 정도로 시장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바깥주인이 말없이 고개를 숙입니다.


-궁벽한 살림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말 마시게. 어디 음식을 입으로만 먹는가?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배부르다네. 내 일간 또 들름세. 아이고, 이 녀석들 그 사이 훌쩍 자랐구나.


손님은 뼈마디 굵은 손으로 마른버짐이 잔뜩 낀 아이들의 얼굴을 한 번씩 쓸어주고 사립을 나섭니다.


손님이 사립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두 아들이 방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이내 손님이 손도 대지 않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웁니다.


-야박하기는!


눈치 없는 남편이 무화과 껍질을 벗겨 꼭지만 남기고 깨끗하게 먹자 아내가 눈을 흘깁니다.


-그렇지. 예를 아는 식사법이야. 이럴 때가 아니면 애들이 언제 이런 걸 먹어 보겠는가?


남편이 아침을 먹고 일어서자 접시를 비우며 아내가 말합니다.

닭모이2.jpg

바가지에는 음식 찌꺼기가 가득합니다. 무화과도 옥수수도 고구마도 먹었는가 말았는가 싶게 겨우 이빨 자국만 내고 남겼습니다.


먼 길 오느라 잔뜩 배가 고팠으나 어린아이들을 위해 손도 대지 않고 고기를 남긴 손님의 마음이 운파재로 이어집니다.

닭모이.jpg

그렇습니다.

이 음식 찌꺼기는 쓰레기가 아니라 닭 모이입니다.


운파재에는 수탉 한 마리와 알도 제대로 낳지 못하는 암탉 열한 마리가 주인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닭.jpg

고작해야 하루에 서너 개의 알을 낳습니다만 우리 부부 먹고 남습니다. 내 좋은 것 남겨 너를 주고 내 귀한 것 아껴 나를 주니 이보다 더 귀한 선순환이 어디있겠습니까

계란.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원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