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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단상

[도를 아십니까?]-25.09.21.

by 마담D공필재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아끼던 장미가 죽었다. 가든오브로즈.

가든오브로즈3.jpg 가든오브로즈

화형도 중간 크기이고 반복개화성도 좋은 사계장미로 내가 좋아하는 조건을 두루 갖춘 애라 애지중지하던 장미이다.

가든오브로즈는 땅 장미 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편이라 화분에 키우는 사람이 많다. 나도 엄마가 사용하던 항아리에 심어 3년을 키웠다.


식물을 처음 화분에 심을 때는 몸집이 작기 때문에 공간이 넉넉하다. 하지만 나무가 성장하면 뿌리를 더 넓게 뻗을 수 없기 때문에 흙은 모두 사라지고 뿌리만 남아 서로 엉키게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분갈이를 해 줘야 하는 것이다.


3년 동안 항아리에서 자란 우리 집 가든오브로즈도 몸집이 커져서 이제 더 큰 화분이나 땅에 옮겨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항아리는 특성상 주둥이는 좁고 몸통이 넓다 보니 몸통 크기에 맞게 성장한 식물을 온전하게 뽑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든오브로즈2.jpg

이를 어쩌나 고민하다가 뿌리에서 20센티 정도 남기고 줄기를 모두 잘라내는 강전지를 해서 내년 초봄에 어찌해 보자 결심을 하고 흙 대신 우선 웃거름을 넉넉하게 주기로 했다.


유박과 퇴비를 정말 넉넉하게! 사랑하는 마음만큼 아주 넉넉하게! 듬뿍 주고는 물도 흠씬 주었다. 넉넉하게 인심을 썼으니 이제 가을에 넉넉한 꽃으로 고마움을 돌려주겠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여린 순부터 시들시들해지더니 점점 까맣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거름이 과했구나. 정신이 잠깐 나갔었나? 퇴비나 유박에서 발생하는 독한 가스 때문에 나무가 상하게 되어 있는데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4년 차 가드너가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괜찮을 거야. 어린 묘도 아니고 5년 정도 된 성목인데 뿌리야 다치겠어? 여린 줄기가 죽으면 새순이 올라오겠지? 따위의 잔망스러운 기대로 걱정을 가리며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대처럼 새순이 올라오기는커녕 굵고 오래된 줄기마저 점점 까맣게 변해 갔다. 죽은 걸까 설마? 어쩌지? 물을 흠뻑 주면 희석이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또 잔꾀로 근심을 가리며 기다려 보았다.

한 달이 지났다. 그래, 내가 또 한 순간의 그릇된 판단으로 잘 자라는 애를 죽였네, 죽였어. 하다가 또 그럴 리가 있나? 장미가 얼마나 강한데 설마? 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생사를 확인해 보기로 하고 줄기를 잡고 슬쩍 당겨 보았다. 아이고야, 이를 어쩌나? 뚝 소리가 나면서 나무가 쑥 뽑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내 죄를 내가 알렸다! 의 상황과 맞닥뜨리면 내 속에 숨어있던 미처 자리지 못한 어린애가 불쑥 튀어나온다. 그날도 그랬다.


당황스러움을 감추려고 헛기침을 흠흠 하고는 누구 보는 사람은 없겠지? 괜히 주변을 휘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뿌리를 슬그머니 항아리에 올려놓고 천천히 일어나 집안으로 들어왔다.

가든오브로즈1.jpg

처음 시골에 터를 잡았을 때 텃밭을 잘 다듬어 씨앗을 뿌리거나 모종을 심으면 알아서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말라죽고, 습해서 죽고, 벌레 먹어 죽고,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이유도 없이 죽고, 이래죽고, 저래 죽고, 갖가지 이유로 죽어 나가는 게 태반이었다.


-뭐가 문제야? 에잇, 다신 안 해

속상해서 눈물이 날 지경인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어쩔 거냐? 내년에 또 심으면 된다.

라고 하셨다.


그때 ‘엄마는, 농부들은, 참 대단하구나. 하늘의 이치를 정말 순순히 받아들이는 순응교회 교인들이야.’ 싶었다.


그런데 4년 정도 텃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꾸다 보니 이제 나도 알겠다. 그것은 순응이 아니라 건강한 체념이라는 것을 말이다.


겨울 내내 계획하고 땅 녹기를 기다려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는 수고로움이 하루아침에 무로 돌아갔는데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일어서려는 것이다. 다음을 기약하려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나처럼 자책하며 무너져 버린다면 다음은 없다. 이럴 때 신이 필요하다. 인간이 제 아무리 용을 써도 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 신의 뜻인 것이다. 그러니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떠넘기기인가 말이다.


그래 엄마는, 농부들은 자연의 이치 앞에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기 위해서 자연의 이치를 이용하는 영리한 수를 두는 체념교회 교인들이었던 것이다.


며칠 후 까맣게 말라죽은 장미 뿌리에 남은 흙은 털어내며,


죽고 사는 거야 하늘의 뜻이지 무엇을 어찌하겠어 내가?(지가 실수했으면서) 괜찮아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맞아. 네 정원을 봐. 작년에 심은 것 중 몇 개가 살아있는지) 아무렇지도 않아 이제.(속상해 죽겠으면서) 이 일을 계기로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해져야지 뭐.(그래, 과유불급! 애정도 병이야.)


중얼거렸다.


시골살이 4년 차에 도를 터득했다. 이제 나도 당당한 체념교회 교인이 된 것이다. 허허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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