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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단상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야지]-25.09.13.

by 마담D공필재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야지]


사촌이 논을 샀는데 배가 아프지 않다니 그놈을 대체 어디에다 쓸 것인가?

사촌 중에 동갑내기가 있다. 저나 내나 가난한 집에 태어나 먹었는지 곯았는지 풀칠이나 겨우 하며 자란다.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농사일을 거드는 것 외에 소속이 없었던 어느 해 봄, 사촌이 ‘성공해서 돌아올 터이니 날 찾지 말라.’는 결의에 찬 메모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물론 지난 장에 고모부가 소 판 돈을 통째로 보자기에 돌돌 말아 허리춤에 단단히 차고서 말이다.

유행에 민감한 것도 청년의 특권인지라 예쁜이도 금순이도 밤 봇짐을 싸고 달아났다는 곳으로 무작정 상경한 사촌은 귀인을 만나 부지불식간에 방석으로 깔고 앉을 만큼의 돈을 번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고모부의 품에 소 판 돈에 고리에 고리를 더해서 덥석 안긴다.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한 채 고모부는 사촌의 이름으로 논 열 마지기를 산다. 참으로 천하의 몹쓸 놈이 효자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그랬다고 치자.

이 망연자실할 사건 앞에서 허허허 기특한 녀석, 내 그럴 줄 알았지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축하를 한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어머니가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에이, 배알도 없는 놈! 혀를 끌끌 찬다.

그렇다.

사촌이 논을 샀으면 ‘응당 마땅 고도리’로 배가 아파야 하는 것이다. 부러움과 질투로 화가 끓고 밤잠을 설치며 아버지가 소 팔 날을 노리거나 야반도주에 적합한 손 없는 날을 꼽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밥 대신 잠 대신 부러움에 질투에 혼을 내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변화의 출발이며 발전의 시작이다.

그랬던 것 같다.

나 역시 마당을 파헤쳐 정원을 만들고 장미를 원 없이 심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거기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EBS 건축 탐구-집!

1편과 2편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고 3편을 보자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He can do it. She can do it. Why not me?

I can do it!


5편 정도를 보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스케치북과 펜을 들고 머릿속을 떠도는 내 정원의 구도를 그리고 있었다.

사촌이 논을 샀고 나는 배가 아팠고 우리 아버지가 소를 팔았고 나는 그 돈을 훔쳤고 무작정 상경하였고 돈으로 방석을 만들어 깔게 되었고 나도 열다섯 마지기의 논을 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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