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원 단상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25.09.09.

by 마담D공필재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풀벌레 소리 가득한 이른 아침, 어둠을 밟으며 온실에 불을 켠다.

어둑한 정원을 어슬렁거리다가 따뜻하고 환한 불빛이 쏟아져 나오는 온실을 본다.

그저 바라본다.

나는 작은 토끼이거나 성냥팔이 소녀이거나 빨간 망토를 입은 소녀. 춥고 어둡고 위험한 세상에서 내몰리고 쫓기고 휘둘렸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집이 없는 날이 허다했다. 태반이 떠돌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세상은 돌아앉아 패각처럼 입을 다물었다.

쌓으면 무너지고 쌓으면 무너지는 모래성 같은 그런 삶을 살았다. 그 숲에 두려움과 막막함 외에 무엇이 있었던가.

내게 생명을 기댄 것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어쩌면 그 의지를 포기하기 않으려는 의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희망이란 쪽배를 타고 절심함이란 노를 저어 위태하게 시간 위를 흘렀다.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느 날 문을 열고 팔을 벌려 나를 품어 준 집. 나의 집 운파재. 내가 지친 날개를 접고 배를 보이며 잠들 수 있는 곳.

불을 켠다. 따뜻한, 안온한, 아침노을빛을 닮은 불을 켠다.


운파재를 밝힌다. 쏟아지는 불빛을 본다.


여전히 세상은 냉정하고 바람은 차다.

그러나

“여보세요. 여보세요. 문 좀 열어주세요.”

두드리면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기꺼이 문을 열고 냉기를 털어주는 집이 있다.


작은 토끼는, 성냥팔이 소녀는, 빨간 망토의 소녀는, 나는, 안전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원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