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필요한 날엔
운동하러 갈 때마다 지나치는 길목에는 월요일마다 작은 아파트 시장이 열린다. 과일과 야채, 생선을 파는 작은 시장, 돈가스를 튀겨파는 트럭도 빠지지 않고 매번 서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유난히 돈가스 튀기는 소리는 크게 들렸고, 맛있는 냄새는 유독 코끝에 오래 머물렀다. 문득 그 냄새가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
중학교 2학년, 한참 예민하던 시절이었다. 학기 초부터 나를 괴롭히던 남자아이들 무리가 있었다. 아마 내 화난 리액션을 보는 재미로 시작한 놀림은 가을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흔히 하는 외모지적이었다. 지금이라면 상처받았을지라도 무덤덤한 척 넘길 수 있었으나 그때는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콤플렉스로 느끼는 아픈 구석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콕콕 찔러댔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창피함의 얼굴은 붉어졌고, 마음엔 그보다 진한 수치심만이 남았다. 그날은 유난히 도가 지나쳤다. 계속되는 놀림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거의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엄마가 갑자기 돈가스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평소 돈가스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삶의 의욕도 식욕도 없어 어떤 것을 먹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입구 문을 열면 딸랑 거리는 경쾌한 종소리가 나는 돈가스 집이었다. 하얗다기보다는 노란, 노랗다기보다는 좀 더 연한 색의 수프가 나왔다. 급식에서 자주 나오는 흔히 먹던 익숙한 맛의 대기업 제품인 듯했다. 한 숟갈 뜨자 후추 맛이 느껴졌다. 수프를 먹으며 엄마와 별 일 아닌 대화를 나눴다. 하얗고 큰 접시에 얇고, 바삭한 튀김옷이 덮혀진 왕돈가스가 나왔다. 갈색 소스가 부어져 있었고, 노란색 옥수수콘 샐러드와 단무지, 동그란 모양으로 소담히 담긴 흰쌀밥이 보였다. 양손에 칼과 포크를 잡고 열심히 썰고, 또 먹기를 반복했다. 맛있었다. 분명히 식욕이 없었는데.
대화 중에 얼핏 학교에서 놀림을 당했다고 얘기했던 것 같기도 했다. 엄마가 그 친구들을 같이 욕하며 위로를 해주었는지 아니면 별 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른 얘기로 넘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건 내가 돈가스를 먹다가 식당 화장실로 가서 엉엉 울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터져버린 그 눈물의 의미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눈물을 닦고 다시 돌아와 아무렇지 않은 척 돈가스를 먹었다. 엄마는 내가 울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척했던 것일까.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춘추복 사이로 들어오는 가을밤의 공기가 왜인지 상쾌하게 느껴졌다. 죽고 싶었던 생각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사라졌다. 별 것 아닌 식사였다. 대단하지 않은 메뉴였다. 음식이 따뜻해서였던 건지, 식당의 조명이 따뜻해서였던 건지, 날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따뜻해서였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때의 분위기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한 끼의 식사가 없었더라면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아마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용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간절하게 들었을 정도 힘든 날이었음은 확실하다.
지금도 죽을 만큼 힘들 때가 오면 가끔 그날을 생각한다. 별 것 아닌 식사가 벼랑 끝의 내몰린 누군가를 살리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고마운 일은 그때 참 고마웠다고, 힘이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표현의 방법이 투박하더라도, 비록 오래 걸리더라도 너무 늦지 않게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주도 익숙하게 돈가스 트럭을 지나쳐가며 살까 말까 고민을 하며 문득 생각했다. 엄마에게 아직은 그날의 일을 말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본인이 날 살렸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던 것을 더 마음 아파할 것 같았으므로. 지금이라도 말해보는 건 어떨까. 그날의 식사가 참 좋았다고. 그날의 식사가 참 따뜻했다고.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덕분에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었다고. 엄마가 나를 살렸다고. 그래서 조만간 맛있는 돈가스나 같이 먹으러 가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