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은 있지만 쓰지 않는,

선명함은 가끔이면 충분하다

by 갱년기파이터

양 쪽 0.3

이것도 몇 년 전 결과이니 지금은 정확하지 않다.

한 이틀 착용해봐도 영 착붙이 안됐다.

낮은 콧잔등에 올라가 있을 때보다 둥근 코끝에 매달려 손길을 기다릴 때가 많은 3살짜리 같은 안경이였다.


처음 안경점을 나설 때는 아 이런 것도 보이는군, 신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 이런(안 보여도 되는) 것도 보이는군, 눈이 게슴츠레 해졌다.

안경을 쓰기 전에는 사람을 못 알아보고 인사를 안 하거나 잘못 알아보고 인사를 하거나 하는 싸가지의 문제였으니 그냥 안 쓰기로 했다.


내 안경의 보금자리는 13년 된 차 안.

운전하다 싸가지없는 채로 돌아갈까 봐 차 안에선 잘 쓰고 다닌다.

그리고 강의를 듣거나 자막이 필요한 영화를 볼 때, 이 외에는 약간 흐린 세상을 본다.

불편하지 않은 흐린 세상에서 선명함이 필요한 순간은 많지 않다.

선명해지는 순간 너무나 잘 보여서 몸에 군기가 든다.


안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자꾸 흘러내려서가 아니라

내가 보는 만큼 남들도 보겠구나, 내 모습을 선명하게 보겠구나.

어쩌면 습자지만큼이라도 숨고 싶어서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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