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맛 아이스크림이 좋아졌다

바닐라맛보다 더.

by 갱년기파이터

바닐라맛, 초코맛, 딸기맛.

어릴 때 먹었던 아이스크림들은 보통 이 세가지로 구분됐다.

바닐라맛을 특히 좋아해서 부라보콘이나 빵빠레, 투게더 같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지금은 너무 많다, 아이스크림이.



기쁘거나, 화나거나, 슬프거나.

어릴 때의 감정이란 단순하고 명료해서 헷갈리는 일이 없었다.

심부름 시키는 언니때문에 화가 나고

내 간식을 가로채는 오빠때문에 눈물이 나고

늘 바쁜 엄마가 집에 있으면 기뻤다.

학교 끝나고 혼자가 아닌 것도 좋은데 엄마가 부침개까지 해주면 너무 행복했다.


그러던 것이 자꾸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 수백개의 감정을 느끼게 됐다.

일 다니던 엄마가 그 시간에 집에 있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고

사춘기를 지나는 언니오빠의 감정선에 얽혀들며 정의할 수 없는 느낌을 일찍 배웠다.

커가면서는 나의 감정을 정의하고 다루는 방법도 체득해갔다.


사십대를 지나는 요즘은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지금 이 느낌인지 생각하다보면 너무 깊게 빠지는 것 같다.

자꾸 되감아보고 놓친 부분을 체크하고 남의 기분까지 헤아리려니 과잉이다.

상대를 이해하려다 나는 곧 투명해진다.

나를 잃지 않으려고 요즘은 감정 가지치기 연습 중이다.

예전엔 이해가 되어야 마음이 편했는데 갈수록 대상과 과정이 늘어져 잘라내기로 했다.


오케이, 패스.

이해 안 해도 된다. 내 생각이나 하자.


건조기를 돌렸던가?

그 음악을 들었던가?

화장지가 넉넉하던가.. 아 사야겠네.


단순해지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집어치우는 게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

오늘은 세탁과 건조를 잘했고, 설거지도 미루지 않았고, 먼지를 걷어냈다.

햇감자를 맛있게 쪄놓고, 찐계란도 깨끗하게 벗겨놨다.

책은 두 페이지 넘기고 덮었지만 일기를 잘 쓰고 있다.


어쩜 간이 딱 맞게 밴 찐감자를 딸래미와 나눠먹고 눈을 맞추며 몇 마디 나눠본다.

우리 엄마도 부침개 부쳐줄 때 그랬을까, 난 엄마 옆모습만 기억하는데..

예쁜 딸래미가 먹여준 딸기아이스크림 한 입이 참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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