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은 지 14년이 지났다 후덜덜
중간고사 시즌이 돌아왔다.
딱히 달라진 생활은 아니었다.
4월 23일, 그러니까 네 밤만 자면 시험 첫날이 되는 첫째와 둘째는 여전히 한가하고 여유롭다.
D-day 5일 전 신규 중2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신규) 나 공부하려고 오늘 교과서 챙겨 왔어
-(아빠) 오오~ 오늘부터 하는 거야?
-(신규) 아니지, 주말부터 해야지
당연한 듯한 신규의 명랑함. 우리는 옥수수를 뜯으며 한화이글스가 이기고 있는 것에 행복해했다.
D-day 4일 전, 5시에 알바를 마치고 갈매기살 먹고 싶다던 신규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
본투비 집순이 출신인 딸내미는 뭔가 먹고 싶거나 필요한 게 있어도 인내심을 키우는 데 사용할 뿐
성취하려 외출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확인 작업을 해야 한다.
-(갱파) 저녁에 갈매기살 콜?
-(신규) 음.. 난 상관없어
부정은 확실하지만 긍정은 모호하게 표현하는 밀당의 고수님. 이 정도면 오케이다.
오오 좋아 저녁은 내 손으로 안 해도 되겠군. 좋다고 전화 끊자마자 다시 전화가 온다.
-아 근데 나 스카(스터디카페) 가기로 했어
.. 5시가 넘었는데 통금 9시인 녀석이 언제 다녀온다는 걸까...
-밥은 먹고 가야지 언제 갈 건데
-금방 갈 거야 배 안 고파
하아 그래 알겠다..
결국 8시 넘어 나서며 한다는 말이 11시까지 오겠단다.
그래 해 봐라.
친구들이랑 밖에서 공부해 보는 것도 처음
스터디 카페를 가는 것도 처음이니 해 봐.
친구들이 있다는 라멘집 앞에 내려주고 돌아와
나도 라면 하나 끓이고 식탁에 올리자마자 또 전화가 온다.
도덕, 역사, 과학 문제집을 놓고 왔다고??
가방에 뭐 가져갔냐 하하하
아이들 어릴 때부터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며 재능교육의 모토에 충실했던 나인데
중딩이들이 되고 나서는 안쓰러운 마음에 수발러가 되어 가고 있다.
열라면이 잘 끓었다. 부글부글.
그나마 스카에 자리가 없다고 근처 더벤티에 있다는 소식이다.
열라면 하나 더 끓일 뻔했지만
막상 가보니 투명창 너머로 고만한 여자아이들 넷이 볼펜 들고 모여 있는 게 보여
하긴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슬몃 안심이 되긴 했다.
다시 돌아와 세탁기와 세척기에 일감을 주고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꾸준히 해야 한다는
브런치 스토리에 접속해서 놀고 있었다.
pm11:20분까지.
30분까지 기다리려다가 십 분을 더 못 참고 전화했더니
친구 한 명이랑 걸어오고 있는 중이란다.
동 이름이 바뀌는 거리를 비도 부슬부슬 오는 이 밤에 말이다.
심지어 곧 친구와 헤어져 나머지는 혼자 온단다.
바로 마중 나가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통화 중,
통화 중,
통화
중,
통
화
중,
으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몰라 모퉁이에 서서 불안을 키우며 계속 전화를 했다.
40번쯤 했을 때 약간 으슥한 동네 작은 공원에서 나오는 녀석.
나는 세 문장을 얘기하고 입을 다물었고
녀석은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무한한 상상력 탓에 참아도 눈물이 한 줄 넘쳤다.
아 울 정도 일은 아닌데.
의연하게 말했다. 먼저 올라 가, 한 바퀴 돌고 갈게.
엘베 타는 걸 확인하고
5층에서 멈춰 현관문이 여닫히는 소리까지 쫑긋 듣고 밖으로 나갔다.
어흐 쌀쌀하다. 눈물이 쑥 들어간다.
비가 와서 어디 앉을 데도 없고 갈 데도 없어 놀이터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본다.
아이고 다리 저려 오래도 못 있것네.
곰새 일어나 터덜터덜 따수운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와 15년, 둘째와 14년째 동고동락 중이지만
아직도 매일이 서툴고 새로운 일 투성이다.
그래도 엄마애송이치고 오늘도 잘 지나갔다.
벌써 오늘이 내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