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굳게 먹고 헛다리 짚은 건에 대하여
자잘자잘 사춘기를 넘어가고 있는 아들에게 요즘들어 거슬리는 게 있었으니.
말을 해놓고 지켜지지 않으면 중언부언 말을 섞어대는데, 말범벅 속에 '엄마는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라는 베이스가 흐르는 것 같아 내심 긁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좁고 긴 마음을 가진 갱년기 엄마는 차곡차곡 괘씸함을 적립하고 있었다..
밤늦게서야 텀블러를 꺼내 놓는 것도 은근히 근질근질한데 오늘 아침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따 잘 걸렸다, 안 내놨단 말이지.
학교 가는 차 안에서 물병이 없더라를 시전했다. 분명히 내놨는데, 라고 응수하는 녀석.
-(갱년기)학교에 놓고 왔나부지
-(사춘기)아니 그럴 수가 있냐고
아아 또 긁혔다.
뭐가 그럴 수가 있음? 집에서 학교로 가져간 물병이 집에 없으면 학교에 있겠지, 뭐가 어이없는 일이란 듯이 말하지? 입을 다물었다. 결론이 안 날 얘기니까.
다시 만난 저녁에 또 물었다. 어디 놨냐고~ 내 텀블러 어딨냐고~
답답해 하며 모른다고 하는 녀석에게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라는 쓸데없는 결심을 하고
-너 분명히 안 내놨어, 내일 학교 가서 다시 찾아 봐
단호하게 말했다. 자주 쓰는 말이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였던 나는 살던대로 살았어야 한다.
식기 건조대에서 냄비와 보울을 들어내니 아 왜 너 거기 있냐.. 장담한 지 십 분도 안 지났구만ㅠㅠ
학씨 아저씨를 떠올리며 나지막히 뱉어본다.
하악.. 씨이...
염치없는 발걸음으로 다가가니 표정이 이상했는지 갑자기 ' 옷 새로 샀어?' 묻는 착한 아들.
원효대사 해골물은 진리다. 아들이 착하고 괘씸하고는 내 마음에 달렸으니 하핫
-텀블러 찾았다 미안하다~
사건현장을 재현하며 이래이래 해서 안 보였다, 미안하다 세 번 사과했다.
마음 쓰지 말라는 말까지 하는 니가 완벽하게 이겼다. 적립됐던 괘씸함은 구멍나서 꼬르륵 사라졌다.
내일 아침 시원한 물 가득 담아주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