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남미2] 우유니에서 아타카마 사막까지, 알티플라노 고원
우유니에서 아타카마 사막으로 넘어가는 2박3일 투어를 시작했다. 7인승 랜드크루저에 기사와 6명의 여행자가 탔다.
우유니 사막을 포함한 볼리비아의 고원 지대를 '알티플라노 고원(Altiplano)'이라고 한다.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는 안데스 산맥 가운데에 비교적 평평한 지형을 보이는 곳이다. 지역 전체의 고도가 매우 높은데, 보통 3500m 이상이고 5000m를 훌쩍 넘는 곳도 많다. 물론 그 안에 있는 화산들은 더 높다. 여기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호수 티티카카도 있고, 공간 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우유니 소금사막도 있다.
이 알티플라노 고원을 둘러보려면 볼리비아의 우유니(Uyuni)나 칠레의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에서 당일 투어를 여러 번 하거나, 2박 3일 혹은 3박 4일짜리 투어를 한다. 나는 우유니에서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까지 가는 2박 3일 투어를 선택했다.
투어는 7인승 랜드 크루저 한 대에 기사 겸 가이드 한 명과 투어객들이 타고 일정을 내내 함께 하는 형태다. 고원 대부분의 지역에는 주민이 살지 않는다. 일부 구간에서는 통신도 두절된다. 투어 중간에 잠을 자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간소한 숙소가 있는 정도다. 이런 불편하고 몸이 고된 여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 사이의 배려와 유머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같은 여정을 경험한 사람들의 후기가 '끔찍한 경험'에서부터 '천국을 엿봤다'까지 다양한 건 이 때문일 거다.
우리 일행은 기사 겸 가이드 아드리안, 어린 딸 레아를 데리고 여행 중인 영국에서 온 플로리아, 미국에서 온 포레스트와 대만에서 온 디나 커플, 독일에서 온 니나, 그리고 나 이렇게 일곱 명이었다. 우리 팀은 스페인어 가이드 팀이다. 하지만 레아와 디나는 스페인어를 못했고 다른 사람들도 유창하게 잘하지는 못했다. 영어 가이드 팀과 스페인어 팀은 비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약간의 스페인어만 알아도 이쪽 팀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행도 가이드인 아드리안과는 스페인어로 소통하고 일행끼리는 영어로 얘기했다. 우리 중 스페인어와 영어를 제일 잘 하는 포레스트가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 이들을 배려해 가이드의 말을 영어로 전해주는 역할을 종종 해주었다.
포레스트는 영어 선생님이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니 나를 보고 '안녕하세요'하며 한국어 인사를 건넨다. 포항에서 1년 정도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일정 내내 '괜찮아요' 같은 간단한 표현이나 한국어 단어가 생각나면 열심히 말하곤 했다. 외국어로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친구였다. 멕시코에서도 1년 살았다고 하고 당시에는 타이완에서 살고 있었다. 여자친구인 디나와 휴가를 내서 남미 여행을 함께 하는 중이었다. 디나는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밝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 함께 지내는 것이 편안했다. 프레스비 동호회에서 만났다며 프레스비를 열심히 소개했는데, 그런 것이 스포츠로 통하는지 미처 몰랐었다.
첫 숙소에선 방을 두 명씩 썼는데 포레스트-디나는 커플이고 플로리아-레아는 가족이다보니 나와 니나가 한 방을 썼다. 니나는 쿨하고 친절해서 좋았다. 밤에 불을 켜고 누웠는데 둘이 동시에 전자책을 꺼내들어 깔깔 웃으며 전자책 예찬을 한참 하기도 했다.
플로리아는 요가를 즐기는 폴로 베지테리언이다. 어린 딸과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어 약간 놀라웠다. 레아는 우리 팀의 활력소였다. 초반의 서먹한 시간이 지나고 몇 가지 상황을 거친 후 레아는 나를 보고 "You're my friend."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냥 친근감의 표시겠지. 아니었다. 날 찍은 거였다. 이후로 나는 네버엔딩 가위바위보를 시작으로 다양한 놀이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레아의 친구는 다른 사람들로도 확장되었다.
어린이가 있으니 확실히 팀 분위기가 좋다. 물론, 다소 어려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레아 덕분에 우리 차는, 말하자면 오디오가 빌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재잘거리며 질문을 던지거나 놀이에 함께 할 것을 종용한다. 긴 주행시간으로 침묵의 여정이 되기 십상인데 우리 차는 웃음이 많았다.
폭풍 속으로
알티플라노를 지나며 풍광에 압도되는 가장 큰 요인은 눈앞이 탁 트이는 끝없는 공간이 펼쳐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은 산이 겹겹인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그래서 경이로운 풍경. 하늘은 반구 이상으로 펼쳐진 듯하고 구름은 아주 가까이 떠 있다. 그래서 구름 아래를 지날 때면 아주 짙은 그늘이 드린다.
그 날은 오후부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이쪽은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뭉게거리는 환상적인 날씨인데, 저쪽 편은 먹구름이 두텁게 끼어 토네이도 같은 모양의 선을 여러 개 보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곧 그 먹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당근 호수'에 가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