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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일지 Jan 13. 2021

마흔을 위한 선물

망원동의 마흔 1

망원동에는 정글 같은 플라워샵이 있다. ‘식물상점’이라는 이름처럼 그곳은 꽃보다 수많은 가지들과 잎으로 둘러싸여 있다. 플로리스트가 만드는 작품들도 공간처럼 자유롭고 야생의 향이 난다.


마흔을 앞두고 나는 나를 위한 꽃을 이곳에서 주문했다. 원하는 꽃의 종류나 색감, 취향, 분위기 등을 얘기해주면 맞춤 제작을 해준다고 했지만, 아는 꽃이 별로 없는 나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어 진취적이고 자신감을 주는 분위기면 좋겠습니다.” 대체 어떤 꽃이 이런 느낌을 주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기분 좋게 예약을 하고 2020년의 마지막 날을 기다렸으나, 나는 12월 30일에 엄청난 급체를 하고 이틀을 지옥에 있었다. 식물상점이 집에서 3분 거리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기운 없는 몸을 겨우 끌고 도착해 꽃을 받았다. 색색으로 가득한 크고 작은 꽃이, 푸르른 나뭇가지가, 작고 귀여운 열매가 잔뜩 담긴 하나의 정원.

얼마간은 아파서 물만 겨우 갈아줬는데, 해가 지나고 몸이 살아나면서 이 한 다발의 조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노랑도 각기 다른 질감과 형태와 색을 가졌고, 모두의 잎도 달랐다. 하지만 하나로 묶인 어울림이 특히 좋았다. 꽃은 금세 시들겠지만 이 정원이 만들어낸 마음은 내내 기억하고 싶다.


망원동 1인용
오늘의 마흔. 혼자서도 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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