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의 마흔 3
일력을 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달력이란 그저 오늘과 내일의 날짜를 알기 위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예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날짜만 알면 되니까. 기능 위주로 사고하는 이에게는 모든 물건이 그렇다.
그러다 어제와 내일의 날짜 따위는, 다음 달의 휴일 따위는 보이지 않는 ‘일력’을 구입한 것은 달라지고 싶어서였다. 매일이 다른 날임을 의도적으로 알기 위해서, 좀처럼 쓰지 않는 일기를 작은 일력의 빈 공간에 짧게라도 적어보기 위해서. 수많은 일력 중 매일매일의 질문이 있는 ‘에브리데이 큐앤에이 일력’을 선택했다.
공연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의 특성상 타인에게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했는지, 나와 캐릭터 사이에는 어떤 접점이 있는지, 무엇이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나는 그 시간을 ‘수다’라고 말하지만, 실상 ‘인터뷰’라는 건 잘 모르는 이에게 내밀한 감정을 묻는 일이고 그것은 종종 무례해질 가능성도 높다. 단어를 고르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는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케미가 맞지 않으면 쉽게 어긋나기도 한다.
타인을 향해서는 그토록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고 질문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그런 질문을 꺼내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어야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묻지 않아 지워진 것도 많다. 2021년이 되고 열흘간 이런 질문을 만났다.
올해 목표 3가지는?
좋아하는 계절과 날씨는?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만들고 싶은 영화는?
오늘 하루 맡았던 냄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좌우명이 있다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최근에 극복한 일이 있다면?
작년에 했던 일 중에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는 규칙을 잘 지키는 타입인가?
지금 가장 생각나는 친구 3명은?
365개의 질문을 잘 만나고 싶다. 마흔의 나는 매일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망원동 1인용
오늘의 마흔. 혼자서도 잘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