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일인용 4
“어리광을 부리고 싶어.” 지난해, 2021년에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한 행위라는 사전적 단어의 ‘어리광’이라기보다는 정확히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의미였을 것 같다. 찧고 까불어도 용납되는 관계.
‘어리광’이 마흔의 목표라니 어이가 없어 보이지만,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관계가 드물어졌다. 한때 함께 술을 마시고 말도 안 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동료로 시작되었다면 일정 이상의 선을 넘기가 어려웠다. 소셜 포지션이라는 게 있었고, ‘꼰대’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내 안의 마음들은 갈곳 없이 표류했다. 사라지지 않는 마음을 숨기느라 애썼고, 그렇게 쌓인 마음들은 쉽게 썩었다.
어릴 때는 친구들을 만나 털어놓으면 괜찮다고 느꼈다. 곧잘 공공의 적을 만들어 한참을 욕하고 나면 후련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공공의 적’의 일원이기도 했고, 각자의 지옥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너의 지옥에 나의 지옥을 더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각자의 지옥을 버틸 뿐이다.
그럴 때 제일 생각나는 것은 그나마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왜 친해졌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23년을 함께 한 친구가 있다.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첫사랑과 이별의 고통, 상경 후 고독의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각자의 지옥에 살을 붙이기 싫어 긴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어쩐지 얼마 남지 않았을 부모님과의 시간을, 점점 내리막길로 향할 미래를 이야기했다. 친구의 핀잔과 입에 착 감기는 와인 덕에 솔직해졌다. 어설피 눈물 맺힌 눈으로 조용히 내리는 눈을 나란히 서서 바라봤다. 함께 보낸 시간이 20년을 넘어가는데도 정작 눈을 같이 본 시절이 떠오르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은 1인용’이라는 마음으로 살지만 나는 자주 외롭고 누군가가 그립다.
망원동 일인용
오늘의 마흔. 혼자서도 잘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