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옷깃을 잡고 간사이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저기, 가이드 님. 이제 어디로 갑니까?"
"전철 타고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야지. 잠깐만 기다려봐. 여기 너무 복잡하네. 내가 본 블로그가 오래된 블로그였나 봐. 사진하고 많이 다르네. 다시 검색해야겠어. 조금만 기다려."
"그럼 나를 따라와."
"어디 가려고?"
"저 앞에 커플 기억나? 비행기에서 우리 옆자리에 앉아있었잖아. 비행기 안에서 둘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전철 타고 오사카 시내로 들어간다고 했어. 뒤따라가면 될 것 같아."
"스토커야? 왜 뒤를 밟아."
"뒤를 밟는 게 아니라 그냥 앞서 간 사람 발자국을 보고 따라가는 거야. 더 멀어지기 전에 빨리 따라가자."
우리는 커플을 따라 표를 끊고 열차에 올랐다. 열차에 오르니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표정이 왜 그래?"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왜 나를 못 믿어?"
"못 믿는 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난 내 힘으로 하고 싶었단 말이야."
"하지만 쉽게 가는 방법이 있으면 쉽게 갈 수 도 있잖아."
"그건 아빠 방법이고, 내 방법이 아니냐. 여기 올 때 분명히 말했어. 무조건 내 말을 따른다고,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하지, 그런데..."
"그런데는 없어. 내 방법을 따르기 싫으면 지금부터 따로 여행해."
"아, 진짜. 깐깐하네. 알았어. 아무 말 안 하고 뒤만 졸졸 따라다닐게. 됐지?"
환승을 하기 위해 내린 난바역,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캐리어 위에 앉아 있었다. 곁에 서있는 아들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냉랭한 기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예약한 호텔에 가려면 난바역에서 환승을 해야 했다. 한국은 역사 안에서 환승을 하는데 일본은 역사 밖으로 나가 환승역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난바역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노선이 6개나 있었으며, 방금 우리가 내린 난바역이 어느 노선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엄청난 인파 속에서 길을 잃었다. 잠시 후 아들은 말없이 앞장서 걸었다. 나는 캐리어를 끌고 아들의 뒤를 따랐다. 지하상가를 한 이십 분쯤 걸었을까 처음 걷기 시작한 그 자리로 돌아왔다. 당황한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들은 다시 핸드폰 지도를 들여다봤다. 잠시 후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서 걸었다. 걷기 시작한 지 이십 분 후 우리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못 찾겠으면 사람들에게 물어봐. 저 사람 역무원 같은 데 가서 물어보자."
"지도가 이상해."
"그러니까 물어보자고."
"아니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힘들어서 그래, 아침부터 지금까지 벌써 이만 보나 걸었어. 그냥 물어보자."
"내가 찾을 수 있다니까."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니 걸을 수가 없었다. 역무원에게 달려가 지도를 내밀었다. 역무원은 방긋 웃으며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역무원 도움으로 쉽게 환승역을 찾았다. 역무원은 표까지 대신 끊어주며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들이 없었다. 삐졌구나. 아들을 찾으러 어디로 가야 하나? 다시 그 자리로 가야 하나? 속에서 천불이 났다. 다리도 아프고 그냥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캐리어 위에 걸터앉아 마냥 아들을 기다렸다. 삼십 분쯤 지나 아들이 나타났다.
"내가 길 물어본 게 그렇게 큰 잘못이니?"
"길 물어본 게 잘못은 아니야, 잘못은 아빠가 아들을 믿지 못한다는 거지."
"길 찾는다고 한 시간을 걸었잖아. 늙은 아빠는 네 눈에 안 들어오니? 너의 자존심만 중요해? 아빠가 힘들어하는 게 안 보여? 가방 메고, 캐리어 끌고, 이만 보 넘게 걸어서인지 지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거야?"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약속을 어겼으니까 너 말대로 이제 따로 다녀. 아예 한국으로 돌아가던지 너 마음대로 해. 난 지쳐서 더 이상 서있지도 못하겠다."
나는 지갑에서 환전해 온 돈을 다 주고 전철을 타고 호텔로 갔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그냥 한 바퀴 더 돌았어야 했나? 여행 계획 짜느라 고생했는데... 오만 잡생각이 지나갔다. 전화를 해볼까? 아니, 내가 아버지인데 아들이 먼저 사과 전화를 해야지. 그래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내가 먼저 사과를 해야겠지. 젠장.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 중에 문이 열리고 아들이 들어왔다. 아들은 말없이 나에게 비닐봉지를 건넸다. 비닐봉지 안에는 파스가 들어 있었다.
"허리 아프다며."
나는 바지를 내리고 침대에 누웠다.
"왜 그러고 서있어? 할 말 있어? 없으면 파스나 붙여봐. 그래, 거기. 아이고, 시원하다. 어서 씻고, 옷 갈아 입어. 저녁 먹으러 나가자. 아 그리고, 파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