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힘들어.

by 윤희웅

왜. 남자들은 사과를 못할까? '미안해'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 걸까? 아들과 함께하는 삼박 사일, 오사카 여행은 '미안해' 한마디를 못해서 모든 일정이 무너졌다. 데면데면, 머쓱 머쓱, 서로 눈길도 마주치지 못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 소리도 못하고, 좋은 풍경을 보면서 '멋있다'라는 말을 못 했다. 그래도 여전히 아들은 하루 이만보를 걸었다. 아들 눈치가 보여 조금 쉬었다 가자는 말도 못 했다. 도톤보리에서 타코야키를 먹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다. 다행이었다. 도톤보리 다리 난간에서 기대어 쉬고 있을 때,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선전전 모습은 우리나라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서명을 받는 사람과 전단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무슨 내용으로 서명을 받는지 궁금했다. 전단지를 한 장 받아 들고 번역기로 내용을 읽었다. 원전 철거, 환경보호 그런 내용이었다. 환경단체에서 하는 거리 서명전인 모양이었다. 나는 서명대 앞으로가 서명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서명"

"서명을 왜 해, 아빠가 일본 사람이야?"

" 이런 건 국적하고 상관없어. 거리 선전전 할 때 서명 한 줄이 얼마나 힘이 되는 줄 알아? 거기다 외국인이 서명을 하면 더 좋아해."

"일본 올 때 약속했잖아. 문제 만들지 않겠다고. 서명하지 마."

"내가 이 사람들이랑 싸웠냐? 그냥 서명만 한다고."

아들은 한 숨을 내 쉬며 돌아섰다. 나는 서명을 하고 원전 반대 뱃지도 하나 받았다. 타코야키를 먹기 위해 줄을 서는 곳에 아들은 없었다. 아들은 이미 도톤보리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야, 타코야키 안 먹어?"

아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걸었다. 도톤보리 다리 위에서 나는 소리쳤다.

"너 몇 살이야, 미운 일곱 살이야? 제발 그만하자."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밤, 우리는 작은 식당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고 있었다.

"하이볼이라는 칵테일인데 일본에 왔으면 꼭 먹어야 하는 술이야. 도수는 약하니까 걱정 말고 맛 좀 봐봐."

아들은 내가 건네는 하이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눈이 반짝거렸다.

"어때, 맛있지? 한 잔 시켜줄까?"

아들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한 잔, 두 잔, 벌써 다섯 잔을 마셨다. 내가 아는 아들의 주량은 소주 한 병정도, 아니 소주는 독해서 못 먹고 맥주 천 정도인데 하이볼을 벌써 다섯 잔이나 마셨다. 취한 아들이 나를 바라봤다.

"아빠는 왜 사과를 안 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사과는 내가 아니라 네가 해야 하는 것 아니야?"

"아빠는 나를 그냥 무시해. 나를 절대로 존중해주지 않아. 아빠가 먼저 사과해. 그럼 나도 사과할게."

"먼저 사과하면 자존심이 상해? 아빠가 어른인데 아들이 먼저 사과해야지."

"부자지간을 떠나서 먼저 잘못한 사람이 사과를 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벌써 사과했어."

"언제 사과했어? 나는 기억이 없는데."

"파스 사다 줬잖아. 그게 사과지. 뭐야?"

"그럼, 그때 내가 파스 고맙다고 말했지. 나도 그게 사과야."

"제발, 나에게 사과를 해줘. 나 무시당하는 거 싫어. 나 좀 존중해달라고."

아들은 울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아들은 진심이었다. 정말 미안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미안했다. 내가 나만 생각했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아들은 나의 사과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우리는 오사카에서 마지막 밤을 서로 하이볼을 마시며, 서로 사과하며, 서로 눈물을 닦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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