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MBTI로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유행인 듯하다. 사람들이 모이면 너는 MBTI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 역시 심리 공부를 할 때 MBTI를 공부했고, 분석도 해봤다. 그래서 내 결과는?... 잊어버렸다. 혈액형(4개 유형)으로, MBTI(16개 유형)로 복잡한 사람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MBTI까지는 몰라도 혈액형만큼은 왠지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모두 B형이다. 비슷한 점이 꽤 많았다.
일단 B형은 1) 자기애가 강하다. 자존심이 강해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 쉽게 말해 고집쟁이다. 우리 가족 모두 해당된다. 2) 친구가 소수다. 아니 거의 없다. 그래서 B형은 외롭다. B형은 대인관계에서 표정을 숨길 수 없어 느끼는 대로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 같은 경우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눈썹이 삼각형이 된다. 아는 사람은 많지만 나 자신도 모르는 나를 어느 누구도 나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은 무지 좋아한다. 술 먹고, 놀고, 떠들고 아주 잘한다. 그래서 B형은 울고 있는 피에로 같다. 3) 호불호가 분명하다. 좋아하는 일만 한다. 심지어 눈치도 안 본다. 4)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한다. 누구나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하지만 B형은 선을 넘으면 오래간다. 아들하고 싸우고 2년이 넘도록 말을 안 한 적도 있다. 그래서 결론은 B형끼리 모인, B형 가족은 정말 지랄 맞게 힘들다.
오사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까 걱정이 됐다. 그래도 사과는 했으니 길지는 않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도 했다. B형에 관한 팁 하나를 준다면 B형이 삐졌다 싶으면 일단 시간을 주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풀린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조금만 살갗게 굴면 바로 풀린다. 그걸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게 또 B형이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남은 엔화를 아들에게 건넸다.
"인천 공항에 내리면 다시 환전해서 너 써."
"얼만데?"
"얼추 이십만 원은 될 것 같은데."
아들은 잽싸게 돈을 받았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인사 좀 해라."
"잘 쓸게."
"그동안 잠수 오래 탔는데, 앞으로 계획은 잡았어?"
"극단 좀 소개해줘?"
"연극하게?"
"연기가 많이 부족해. 연기를 배워야겠어."
아들은 서울보다 안산에 있는 극단을 원했다. 안산에서 먼저 연기를 배우고 서울로 상경하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원하는 대로 안산에 있는 적당한 극단을 소개해 주면 내 역할은 끝이다. 하지만 나는 다짐을 받고 싶었다.
"극단을 소개해주는 일은 쉽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이 길을 꼭 가야 하는지, 다른 길을 가야 하는지 조금 더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잘 알 거야. 배우라는 길, 정말 힘들다."
"고민 많이 했어. 그리고 계속 고민할 거야. 생각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없어."
"지금은 이십 대 중반이지만 몇 년만 있으면 너도 곧 서른이야. 고민만 하다가 서른을 맞을 수는 없잖아. 서른 되기 전에 너의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직장 다니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지금은 연기를 하고 싶어."
"그래, 알았다. 극단 찾아볼게. 그런데 아빠한테 화난 건 다 풀렸어?"
"조금 남았어, 제발 부탁인데, 자존심 좀 건들지 마."
아들의 눈썹이 삼각형이 됐다.
"남 말하기는, 너도 마찬가지야. 아빠 좀 건들지 마."
내 눈썹도 삼각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