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놓치다.

by 윤희웅

한적한 바닷가 근처, 오래된 버스 정류장. 버스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 한 대. 버스를 보고도 타지 않는 사람과 저 멀리서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는 두 사람, 결국 세 사람 모두 버스를 놓쳤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멍하니 하늘만 바라본다. 그러다 푸념하듯이 한 명씩 이곳까지 오게 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이야기 속에는 슬픔, 절망, 아픔이 있었다. 어느새 세 사람은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며 위로를 한다. 과연 이 세 사람은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을까? (버스를 놓치다의 줄거리)


오사카에서 돌아온 아들은 극단에 들어가 작품을 준비했다. 제목은 '버스를 놓치다'였다. 극단 대표와는 친구 사이라 아들 모르게 또는 응원차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뒤에서 바라본 아들은 사람들 속에서 많이 웃고 있었다. 아들이 저렇게 많이 웃는 아이였는지 진정 몰랐다. 행복해 보였다. 몇 달의 연습 끝에 올린 무대는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공연을 마친 아들의 얼굴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잘했어, 수고했다."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

"나도 마음에 안 들어. 그래도 수고했어."

"동료배우 보기가 미안해. 나 때문에 다 망친 것 같아."

"내가 봐도 너의 연기가 제일 떨어져 보여. 왜 그럴까? 노인 역으로 나온 사람은 30년 차 배우고, 상대역으로 나온 여배우는 5년 차 배우지. 그럼 너는, 아직 일 연차 배우도 아니잖아. 그럼 당연한 거지. 연기는 자동차 운전이랑 같아. 초보 운전은 도로에서 보면 티가 나. 운전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두렵기 때문이지. 하지만 운전을 자주 하면 실력도 늘고, 두려움도 사라지지. 연기도 마찬가지야. 자주 무대에 서고, 년 수가 늘면 연기가 자연스러워지지. 지금 시작이잖아. 조급해하지 마."


우리는 버스를 타기 위해 엡을 깔고, 시간에 맞춰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기다리던 버스를 올라타고 다음 환승할 버스나 전철을 검색했다. 때로는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도 모르면서 다들 타니까 따라 탄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버스를 놓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아들이 버스를 놓쳤으면 좋겠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도 보고, 주변 풍경도 보고,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있는 꽃들도 봤으면 좋겠다. 나의 바람대로 아들은 연극 연습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자친구와 연애를 하면서 스물일곱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낸 아들은 불안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버스를 놓치다에서 노인 역을 한 배우가 아빠 친구야?"

"너희 대표도 내 친구야."

"아빠가 연기를 자기보다 잘했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 친구가 훨씬 더 잘해."

"아빠 친구는 아빠가 부럽데. 자기는 한 달에 백만 원도 못 벌고, 결혼도 못하고,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며."

"나는 그 친구가 부러워. 하고 싶은 연극 하면서 살잖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아."

"아빠 친구를 보면 30년 후에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래도 되는 걸까?"

"너는 내 조언이 필요 없다고 했잖아. 진흙길이라고 아빠가 말해도 굳이 걸어가 보고 진흙길이 맞는구나 했잖아. 지금도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 해. 그리고 진흙길도 다 나쁘지만은 않아. 차가운 시멘트 길보다는 낭만이 있잖아. 나는 그 낭만이 그립고, 지금이라도 걷고 싶을 때도 있었어."

"걷지 그랬어?"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지. 대신 글을 쓰잖아."

"내년이면 스물여덟이야. 진흙길을 낭만만 찾으며 계속 걸어야 할까?"

"입이 근질거려서 어쩔 수 없이 한마디만 하자. 버스 한 대 정도는 놓쳐도 돼. 두 대 까지도 괜찮아. 하지만 꽃 구경하느라 계속 버스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게 걱정이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내가 보기에 지금은 고민해도 돼. 하지만 서른 넘어서까지는 고민하지 마. 다음 버스가 안 올지도 몰라."

아들은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를 보면서, 해외여행을 꿈꾸는 여자친구를 보면서, 남들이 신나게 즐기고 떠난 테이블을 치우는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아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번 고민이 마지막이 되길 기원해 본다. 야심한 밤, 도저히 입이 근질거려서 참지 못하고 주점에서 알바를 하는 아들에게 카카오톡을 보내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국정과제에 포함된 경찰인력 2만 명 증원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너 초등학교 때 꿈이 경찰이었잖아,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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